[2020 BEST10] 코아르CoAR '오세준'
[2020 BEST10] 코아르CoAR '오세준'
  • 오세준
  • 승인 2021.01.03 14: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아르CoAR 필진 오세준

영화웹진 코아르CoAR에서 영화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제발.' 그러면서도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 혹은 자정에 가까운 시간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을 때면 무심할 정도로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했다. 그렇게 2020년을 살았다. 시간 앞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 몸무게 첫 번째 숫자가 바뀌었고, 내 방에는 맥주캔이 늘어났으며, 극장을 찾는 횟수는 지나칠 정도로 줄어들었다. 대신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스트리밍 작품을 안주 삼아 보게 되었다. 올해의 'BEST10'은 간단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2020.12.27.), 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작품들을 곧장 적었다. 억지로 쥐어 짜낼 필요도, 그렇다고 어느 한 작품 빼놓기 아쉬울 필요도 없었다. 이 영화들은 마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품고 있었던 작품들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기준이다. '품고 싶을 만큼 강렬함'

 

BEST FOREIGN FILMS of 2020 (무순)

1. <1917> 샘 멘데스Sam Mendes |2019

ⓒ (주)스마일이엔티
ⓒ (주)스마일이엔티

스코필드의 몸짓은 적(敵)을 찾기 위한 조명탄의 빛과 끔찍한 세상을 잠시나마 뒤덮을 어둠 사이에서 더욱더 선명해진다. 전쟁으로 무너져 형체만 남은 건물들처럼 그의 몸짓 또한 오직 '생존'으로써의 존재로 간신히 유지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도 전쟁을 겪지도 않은 자가 쓴 공허한 몇 문장일 뿐. 역사를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이 영화의 태도에 반응할 유일한 답은 오직 침묵뿐.

 

2. <내일은 세상 And Tomorrow the Entire World> 율리아 본 하인즈Julia von HEINZ|2020

ⓒ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감정 과잉의 시대. 주인공 '루이자'는 이 시대의 표본과 같다. 총을 들고 어딘가로 향하는 루이자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첫 쇼트야말로 이념과 감정에 휘둘린 한 개인의 과잉된 모습이 어떠한지 보여준다. 떨리는 손에 잡힌 총과 오로지 앞으로만 향한 채 흔들리는 그녀의 뒷모습. 그녀를 담는 카메라의 양각(Low Angle)은 '이토록 (영화 속) 세계는 불안정하다'라고 토로하는 듯하다.

 

3. <레드 Red> 마시마 유키코Yukiko Mishima|2020

ⓒ 전주국제영화제
ⓒ 전주국제영화제

<레드>의 미학적 야심은 운명적 사랑의 대상이 부재했음에도,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랑'을 선택하는 토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여성의 해방'을 오로지 '인물의 움직임을 통한 운동성'으로 끌어낸다. 그렇기에 영화는 관객의 응시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관객의 응시를 필연적으로 끌어낸다는 점에서 뛰어난 성취가 있는 작품임을 기어코 수긍하게 된다.

 

4. <마더 mother> 오모리 타츠시Tatsushi Omori|2020

ⓒ 넷플릭스
ⓒ 넷플릭스

<마더>는 오모리 타츠시 감독의 이전 작품인 <바보 타로>(2019)의 연장선에 위치하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영화와 정반대에 위치한 작품이다. 감독의 시선은 엄마와 아들의 관계 사이에 위치한 울타리를 향한다. 관계를 정의하려는 것이 아닌 확인하려는 듯 모자(母子)를 관찰한다. 또 가족이란 무엇인지 자신의 뜻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닌 정상적인 가족이란 이미지를 깨뜨리려는 듯, 가족의 일반적인 의미와 동떨어진 곳에서 감독은 카메라를 꺼내 든다. <마더>는 지금 일본 가족영화의 현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5. <마틴 에덴 Martin Eden> 피에트로 마르첼로Pietro Marcello|2019

ⓒ 알토미디어
ⓒ 알토미디어

주인공 마틴은 경계에 위치한 인물이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픽션과 논픽션. 더욱이 마틴을 보여주는 방식은 소설이 할 수 없는 영역, 영상언어가 보여줄 수 있는 미학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분명 감탄할 만하다. 과연 '곧 다가올 환멸로부터 자신을 구할 유일한 길'은 존재할까. 그 정답은 영화의 결말 마틴이 헤엄쳐 가는 저 바다 끝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6. <바람의 목소리 Voices in the Wind> 스와 노부히로SUWA Nobuhiro|2020

ⓒ 전주국제영화제
ⓒ 전주국제영화제

'스와 노부히로 감독의 신작'. 과장하면 이 말만으로도 이 영화는 올해 'BEST10'에 들어 마땅하다. '일본 재난의 역사를 써야 함'에 대한 의무와 사명감을 지닌 작품의 태도는 스와 감독 특유의 다큐멘터리적 시선이 작용하는 기질이다. 이는 "집단적 재난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상실감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서로를 돌보고 기대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는 감독의 말에 따라, 국가가 방관하고 묵인하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만든다.

 

7. <언컷 젬스 Uncut Gems> 베니 사프디Benny Safdie, 조슈아 사프디Josh Safdie|2019

ⓒ 넷플릭스
ⓒ 넷플릭스

보는 이로 하여금 내면의 폭동을 일으키는 이 영화 속에는 '비관미(美)'라는 피가 흐른다. 오죽하면 한 쇼트만 도려내도 철철 흘러나올 지경. 주인공 하워드의 낭만은 시종일관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며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이 낭만이 현실과 꿈(환상) 사이를 반복해서 오갈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한 개인의 부조리다. 곧장 터져도 이상할 리 없는 이 스타일리쉬한 영화의 팽창을 막을 방법은 넷플릭스를 종료하는 일 말고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8. <우리 아버지 Padrenostro> 클라우디오 노스Claudio Noce|2020

ⓒ 베니스국제영화제
ⓒ 베니스국제영화제

이탈리아 감독 '클라우디오 노체'의 세 번째 장편영화. 영화의 모든 이미지는 피로 얼룩진 기나긴 역사의 터널 안에서 어둠에 물들이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힘으로 빛을 찾기 위해서 걸어 나아간다. 영화가 조명하는 것은 시대가 아닌, 시대 위에 놓인 인물들 각각의 주체성과 그들의 이행이다. 화려하고 유려한 카메라워크가 돋보이며, 연출과 내러티브에는 풍부한 표현력이 가득 차 있다.

 

9. <트랜짓 Transit> 크리스티안 펫졸드Christian Petzold|2018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단순한 내러티브와 달리 영화가 꽤 복잡한 양상을 띠는 건 오직 주인공 게오르그의 '몸짓'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만남'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모든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만남'은 정착되지 않는 어떤 순간의 찰나일 뿐. 마치 유령처럼 마르세유 안을 부유하는 인물들의 움직임은 우아하면서도 처량하다.

 

10. <퍼스트 카우 First Cow> 켈리 라이카트 Kelly REICHARDT|2019

ⓒ
ⓒ A24

<퍼스트 카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은 '우정'이다. 전형적인 방식을 벗어난 켈리 리처드 감독의 스타일은 시대와 인물, 관계와 시선 등을 분리시켜 주변을 향한 응시로 향하게 만든다. 그렇게 짜여진 이미지에는 '현대'라는 시간이 조직되어 다시금 '자연'을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의 첫 장면에 인용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보다 거대한 증기선의 굉음이 유독 신경 쓰이는 이유가 그러하다.

 

BEST KOREA FLIMS of 2020 (무순)

1. <남매의 여름밤 Moving On> 윤단비|2019

ⓒ 그린나래미디어(주)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는 과거에 매몰되지도, 미래를 향한 걸음에 무게를 싣지도 않는다. 관객의 마음을 이끄는 것은 영화의 솔직한 태도다. 영화의 어떤 순간은 온전히 영화의 이미지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감독도, 배우도 아닌 관객 자신의 자전적인 이미지가 투영되어 비추어진다. 아주 잠깐 허락한 꿈이라는 환상조차 영화는 자극적이지 않고 담담하다. 아늑히 마음을 감싸 안는 영화의 결은 오랫동안 두고두고 보고 싶을 만큼 따뜻하다.

 

2. <내가 죽던 날 The day i died : unclosed case> 박지완|2020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는 육지와 바다,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과거와 현재 이 사이에 존재한다. 영화는 인물들에게 숨을 쉴 수 있도록 자그마한 땅을 만들어준다. 어딘가에 우물이라도 있을 것 같은 하루키적인 영화는 끝에 이르러 자신만의 무드를 형성해낸다. 올해 한국영화에서 여성영화로 가장 만듦새가 탄탄한 작품이다. 오로지 이 한 작품으로 앞으로의 한국영화를 더 진중히 볼 수 있는 의지를 다졌다.

 

3. <도망친 여자 The Woman Who Ran> 홍상수|2019

ⓒ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 영화제작전원사

나훈아의 곡 '테스형!'의 몇 구절을 인용하여 말하자면, "아 상수형! <강변호텔>(2018)에서 보여준 죽음의 통증이 채 아물기도 전에, 이번 작품이 보여준 자연의 평화로움은 고맙기는 하여도, 어디론가 미지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한 이 감정은 도통 모르겠소. '주어지는 것들을 더 온전히 받고 싶다'는 형의 말에 따라 영화가 건넨 이미지들을 온전히 받고 싶을 뿐이오."라고 싶은 마음이랄까.

 

4.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DELIVER US FROM EVIL> 홍원찬|2019

ⓒ CJ 엔터테인먼트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분위기와 태도는 '크레센도 에 디미누엔도', 즉 '점점 세게, 그리고 점점 여리게' 나아간다. 여기서 여리다는 것은 인물의 감정보다는 영화의 비약을 뜻할지도 모르겠다. 강렬하고 거친 몸짓 틈 사이로 인물의 사정은 표출되어지는 것이 아닌 되려 숨어 들어간다. 끝에 다다른 인물들의 정서와 결말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지만,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 그래서 더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을지도.

 

5. <사라진 시간 Me and Me> 정진영|2019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인간과 시간의 유예된 관계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작품. 무언가를 끊임없이 지우기 위해서 애를 쓰는 이미지들의 중첩은 어느덧 관습적이고 선형적인 이야기로서의 영화마저 지워내려 부단히 노력한다. 영화는 관객의 응시를 넘어 (영화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유할 수 있는 힘을 요구하는 듯 다가온다. 베테랑 배우 정진영의 첫 번째 연출작.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6. <소리도 없이 Voice of Silence> 홍의정|2020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이 영화의 출처는 '침묵'이다. 적어도 관객의 위치에서 그렇게 느껴진다. 침묵을 지키는 자의 말은 관객의 응시와 생각이다.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일으키는 이 영화의 출처는 다시 말하지만, 침묵이다. 벙어리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영화가 그를 침묵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한 이유를 더 고민하게 만든다. 그래야 벙어리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에.

 

7.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Come Rain, Come Shine> 이윤기|2011

ⓒ (주)NEW
ⓒ (주)NEW

이 영화의 이층집에는 연인이면서 부부, 곧 헤어질 상황에 놓인 남녀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9분여 가까운 롱테이크의 시작으로, 점점 컷이 쪼개지고 다시 접합되는 흐름은 관계의 상호성을 마치 은밀하고 우회하듯 나타내기 위한 흥미로운 표현이다. 식어가는 사랑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감독의 카메라는 관계를 속단이 정의하거나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진중히 탐구한다. 시간이 흘러도 다시 또 찾아보게 하는 작품.

 

8.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BEASTS CLAWING AT STRAWS> 김용훈|2018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 영화의 '오인'은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39계단>(1935)과 닮았다. 돈 가방은 마치 체호프의 총처럼 작용하고, 영화의 오인은 기표와 기의의 매혹적인 불일치를 만들어낸다. 돈의 출처와 돈의 정착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온갖 악행은 인과율과 합리성을 무너뜨리는 듯 굴지만, 결국에는 강렬한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그 안에 어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캐릭터들까지. 올해 가장 과소평가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9. <조제 Josee> 김종관|2020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조제>는 분명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지만, 엄격히 '김종관'의 영화다. <더 테이블>(2016)과 단편 <밤을 걷다>(2018)가 묘하게 섞인 작품이랄까. 김종관의 이미지는 인물들의 감정을 대변하고 시간을 기록하며 영화의 상태를 보여준다. 한 쇼트가 낭비됨이 없이 그 이미지 자체로 영화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의미를 함유한다. 결국, '조제'라는 것은 인물의 이름이며, 영화의 제목이고, 김종관의 기호이다. 조제를 보여줄 뿐, 조제가 어떤 인물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건 관객인 우리 몫이다.

 

10. <잔칫날 Festival> 김록경|2020

ⓒ (주)트리플픽쳐스
ⓒ (주)트리플픽쳐스

<잔칫날>은 그리 가벼운 작품이 아니다. 그렇다고 '죽음'을 무겁게 다루지도 않는다. 영화가 담는 것은 죽음 이후의 남겨진 것들이다. 장례비가 없어 상중에 일을 하러 가는 경만에게 주어지지 않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 오빠인 경남을 대신에 홀로 장례식장을 지키는 경미에게는 가족을 책임졌던 아빠와 오빠의 '부재'가 대표적이다. 한 개인의 사정과 그가 겪는 소동이 충돌하는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조금 더 곱씹어볼 만큼 마음을 이끈다.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