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티스' 아무리 준비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
'베이비티스' 아무리 준비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
  • 선민혁
  • 승인 2020.12.31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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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시한부 로맨스가 아니다.

<베이비티스>는 죽을병에 걸린 10대 소녀 밀라(엘리자 스캔런)가 겪는 첫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전형적인 시한부 청소년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에게 달콤한 첫사랑과, ‘막을 수 없는 연인의 헤어짐’이라는 운명의 슬픔을 과장하는 것은 관심 밖이다. 대신 더 재미있는 곳에 초점을 맞춘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밀라와의 이별을 앞둔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불안을 겪는 모습이다. 영화는 이를 직접적으로 한 번에 표현하지 않고, 서서히 보여준다. 또한 그 모습들은 단편적이지 않다. 밀라의 모친 애나(에시 데이비스)는 우울과 불면에 시달려 약물에 의존하는 등 좌절을 견디지 못하는 듯하면서도,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밀라가 일상을 최대한 즐겁게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하며 밀라와 보내는 모든 시간을 기억에 담기 위하여 약을 끊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인 밀라의 부친 헨리(벤 멘델존)는 혼란스러워하는 애나보다는 비극을 잘 견뎌내며 밀라와 애나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듯하지만 그 역시도 깊은 절망에 빠져 있으며 애나 몰래 모르핀을 투약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무기력했다가, 분노하기도 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차분하기도 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피할 수 없는 어린 딸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슬퍼한다.

밀라의 병은 완치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최대한 생명을 유지하려면 약을 제때 복용하고 몸에 무리가 가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그런 밀라에게 첫사랑이 다가온다. 등굣길의 전철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모지스(토비 웰레스)이다. 부모에게 버려져 거리에서 살아가며 돌발적으로 행동하는 강렬한 인상의 그에게 밀라는 매료된다. 조심스럽게 살아야만 하는 밀라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모지스에게 ‘crush on’해버린 것이다. 애나와 헨리는 걱정한다. 모지스가 10대인 밀라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데다, 제도권 밖의 삶을 살고 있고, 마약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라의 첫사랑 모지스가 자신들이 밀라에게 줄 수 없는 종류의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동거를 제안한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 엠엔엠인터내셔널

모지스는 밀라와는 달리 안정적인 가정이 없다. 좋은 학교에 다니고,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차분한 일상을 보내는 밀라와 반대로, 모지스의 일상은 거리 이곳저곳을 역동적으로 누비며 생활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지스의 설정은 단지 반대라서, 새로워서 끌리는 첫사랑이라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위해서만 기능하지는 않는다. 이는 죽어가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살아있는 것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을 조명하는 아이러니를 위해서도 쓰인다. 밀라는 항상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지스와 어울리며 생동감 있는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밀라와 모지스는 함께 뛰고, 구르고, 춤추며, 소리 지른다. 밀라는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고 모지스가 이끄는 대로 화려한 곳들에 방문하여 눈 부신 불빛들을 즐긴다. 

영화는 밀라의 주변에서 생명력을 뿜어내는 존재들을 비추기도 한다. 밝은 성격의 임산부가 사는 이웃집의 개는 목줄을 뿌리치고 달리면서 큰 소리로 짖고, 날개가 달린 벌레는 물 위에서마저 쉬지 않고 헤엄치며, 산들바람에 유유히 흔들리는 나무들은 싱그럽다. 게다가 밀라의 집에는 잎이 무성한 초록의 식물들이 가득하다. 밀라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밀라 주위에는 활력 넘치는 생명들이 가득하며, 밀라 자신 또한 단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며 오늘의 삶을 생동적으로 영위한다. 여기에는 클래식부터 하여 일렉트로닉까지, 가지각색의 음악과 감각적인 색감이 함께한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이러한 생동감은 흥미롭게도 영화를 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에 기여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그들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있는 거대한 슬픔을 중화하여, 마치 그들에게 평범한 일상이 지나가고 있으며, 모든 것이 잘 해결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밀라가 가지고 있던 유치(乳齒)는 결국 빠지고,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다. 담담히 찾아온 밀라의 죽음은 예정된 것이었지만, 애나와 헨리, 모지스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밀라는 세상을 떠났다.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다가올 것을 알고 아무리 준비해도 익숙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별이 그렇다고, 그래도 삶은 모든 순간에 계속될 것이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엠엔엠인터내셔널

베이비티스

Babyteeth

섀넌 머피

Shannon Murphy

 

출연

엘리자 스캔런Eliza Scanlen

토비 월레스Toby Wallace

벤 멘델슨Ben Mendelsohn

에시 데이비스Essie Davis

에밀리 바클레이Emily Barclay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제작연도 2019

국가 오스트레일리아
상영시간 117분
등급 15세 관람가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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