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러브' 그냥 막 나가는 게 아니다
'퍼스트 러브' 그냥 막 나가는 게 아니다
  • 선민혁
  • 승인 2020.12.23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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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함께라면"

영화의 초반부에서 나는 걱정이 되었다. 내가 이 영화의 스토리를 잘 따라가,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퍼스트 러브'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거리가 먼,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정신없었다. 다수의 주요인물과 에피소드가 등장했고 이것들은 서로 얽힌 채 빠른 템포로 전개됐다. 게다가 유혈이 낭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퍼스트 러브>의 플롯은 다양한 인물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난잡하지 않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탄탄한 서사와 개성을 가지고 있고, 납득할 수 있는 각자의 동기를 기반으로 하여 스토리를 이끌어 나간다. 저마다의 명확한 동기를 가진 스토리들은 한 곳에서 무질서하게 얽히더라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 때문에 플롯의 진행에 굳이 집중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입할 수 있게 된다.

 

ⓒ 와이드 릴리즈
ⓒ 와이드 릴리즈

인물들이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꼬이고 꼬이는 스토리 전개가 <펄프 픽션>(1994)만큼이나 탁월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 영화가 가진 <펄프 픽션>못지않은 큰 매력은 캐릭터이다. <퍼스트 러브>의 주인공은 갓난아기일 때 버려져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복서 레오(쿠보타 마사타카)와 유년시절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아버지에 의해 범죄조직에 팔려 감금된 채 생활하는 모니카(코니시 사쿠라코) 두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비교적 차분한 캐릭터인 두 주인공의 주위에는 이들보다 훨씬 눈에 띄는 인물들이 즐비하다. 

특히, '반전매력'을 지닌 캐릭터들이 많다.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배신하고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려는 야쿠자 카세(소메타니 쇼타)는 영악하고 치밀한 면을 보이면서도 그때그때 임기응변하는 허술한 모습과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 일단 저지르고 보는 광기 또한 보여주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카세와 손잡고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 몰래 불법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경찰 오토모(오모리 나오)는 무게감이 있는 인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꾸미는 일에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예상과는 다른 상황들에 이리저리 휘둘린다. 그러면서도 오토모는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직업윤리와는 거리가 먼 그가 끝까지 경찰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아이러니한 모습 또한 흥미롭다. 감금된 모니카를 감시하며 그녀를 괴롭히고 성매매를 알선하던 주리(베키)는 카세의 전략 진행 과정에서 희생당하여 사라지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전형적인 일회성 캐릭터인 척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자신의 남자친구 야스(미우라 타카히로)를 죽인 것이 카세임을 알아내고, 광적인 복수심을 발산하며 이야기 전개의 매력적인 변수로서 기능한다.

 

ⓒ 와이드 릴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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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맹자의 '인의'를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여기는 중국 조직 간부(후지오카 마미), 조직이 몰락해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야쿠자의 가치를 주장하는 보스 곤노(우치노 세이요), 한쪽 팔이 없이도 강한 무력을 드러내는 중국 조직 보스 왕의(안정국) 등 등장 시간이 짧아도 개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매력 있는 인물들이 많아 캐릭터를 보는 즐거움만으로도 <퍼스트 러브>는 재미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선명한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와중에도 주인공 레오와 모니카의 이야기가 흐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성 확실한 인물들이 얽히고설켜 에너지를 뿜어내는 동안 레오와 모니카는 묵묵히 그들의 존재감을 쌓으며 잔잔한 로맨스를 전개해 나간다. 덕분에 유혈이 낭자한 한바탕의 활극이 끝난 후, 영화의 시선이 다시 레오와 모니카만의 이야기로 돌아오더라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되고, '퍼스트 러브'라는 제목은 단순한 맥거핀이 아닌, 이야기에 꽤 어울리는 이름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레오와 모니카만을 편애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다른 캐릭터들에게도 각자의 테마에 맞는 결말을 부여하며 책임을 다한다.

캐릭터의 서사와 개성이 탄탄하고, 이들의 스토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화라고 하기에 충분한데, <퍼스트 러브>가 가진 매력은 이게 다가 아니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마구 뒤엉키면서도 각자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지켜내는 것처럼 영화 또한 빠른 템포로 쉴 새 없이 달리면서도 색을 잃지 않는다. <퍼스트 러브>는 지하조직 간의 전쟁이라는 소재에 대한 클리셰를 비틀고, 목숨을 건 전투라는 무거운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연출하며, 결정적인 액션씬을 팝아트로 표현하는 등 과감한 시도 또한 능청스럽게 해냄으로써 영화에 고유한 감성을 입히고, 이것을 유지한다.

<퍼스트 러브>가 관객들에게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지거나,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확실히, 영화를 보는 동안 다른 생각이 들게는 하지 않는 재미있는 픽션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훌륭하지 않은가?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와이드 릴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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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러브
First Love
감독
미이케 다카시Takashi Miike

 

출연
쿠보타 마사타카Masataka Kubota
오모리 나오Nao Omori
소메타니 쇼타Shota Sometani
야지마 마이미Maimi Yajima
벡키Becky
미우라 타카히로Takahiro Miura
사쿠라코 코니시Sakurako Konishi
데아이 마사유키Masayuki Deai

 

수입|배급 도키엔터테인먼트 와이드 릴리즈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8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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