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힐빌리의 노래' 가족, 소극에서 소동으로, 소동에서 그 어디로
[NETFLIX] '힐빌리의 노래' 가족, 소극에서 소동으로, 소동에서 그 어디로
  • 배명현
  • 승인 2020.12.14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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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관한 차이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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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이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인용하게 되는 말이다.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의 이 말은 동양에서나 통용되는 줄 알았다. 가족중심주의와 가부장 그리고 억압적인 정서가 토대가 되는, 이 때문에 그에 대한 분노와 반발심이 은밀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러나 그것이 표출될 수는 없고 내면에서만 간직해야만 하는 동양의 가족상 말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힐빌리의 노래>를 보고는 나의 생각이 약간 달라졌다. 지구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족이란 그 누구든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영화의 시작은 아주 깊고도 깊은 시골의 한 마을이다. 이곳에서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영화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버드아이뷰로 촬영한 마을은 대도시와는 전혀 동떨어진 곳임을 알린다. 동양의 표현으로는 친자연적이며 안빈낙도스러운 장소라고 해야 할까? 문제는 이 시골에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백인인 땅. 이것은 꽤 이상한 것이다.(심지어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나기도 훨씬 전이다) 미국처럼 다인종으로 대변되는 곳에서 모두가 백인인 곳이라니. 물론 상위계급으로 대변되는 와스프(기독교 신앙을 가진 앵글로 색슨계 백인)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곳은 말 그대로 깡시골이다.

이곳에서 자란 주인공 'J.D밴스'(가브리엘 바쏘)는 현재 예일대 법대를 졸업한 상태로 구직 중이다. 그는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누나 '린지'(헤일리 베넷)의 전화를 받게 된다. 내용인즉슨 '엄마'(에이미 아담스)가 약에 다시 손을 대 병원에 있다는 것. 그는 고민을 하지만 역시, 고향으로 향한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그에게 아이러니가 생긴다. 위험한 그녀를 이곳, 고향에 두고 갈 것인가 아니면 면접을 보러 갈 것인가. 며칠 남지 않은 이 시간을 두고 영화는 밴스 가족에 대한 역사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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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진행될수록 밴스의 가족은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고등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한 엄마가 대학에 가지 못한 것과 간호사 일을 하다 마약에 손을 대는 일까지. 그리고 그녀가 밴스와 그의 누나인 린지를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키웠는지. 서양의 가족사 그중에서도 주류 백인이 아닌,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 혈통인 백인 가정을 다룬다. 원작인 책이 밴스의 자서전인 만큼 영화는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밴스인 비교적 긴 시간의 텀을 두고 오간다. 그리고 이 시간의 교차를 통해 가족의 존재가 점차 드러나게 된다.

이와 비교할 수 있는 영화는 <고령화 가족>(2013)이 아닐까. 물론, 동양의 가족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는 오즈의 영화들이다. 하지만 <힐빌리의 노래>에서 보여주는 고약한 난장들과 비견되기 위해선 <고령화 가족>이 적절하지 않을까. 소극과 희극을 넘나드는 이 두 영화는 가족을 통해 대변하는 사회적 시선과 인식을 드러낸다.

이를 말하기 위해선 먼저 공통점을 집고 들어가야 한다. 단연 소동극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전자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현재의 의미가 드러나는 형태라면 후자의 작품은 현재를 겪으며 과거의 진실이 드러나는 형태이다. 이 구조의 차이에서 오는 영화적 서사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먼저 공통점에 집중해보자.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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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소동극의 형태를 통해 얻게 되는 진실에는 사회적 맥락이 함께한다. <힐빌리의 노래>에선 자신들의 토대인 지역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몰락한 공업지역인 러스트벨트이다. 이곳에서 좋은 추억을 가진 밴스는 현재 이 땅에서 벗어나 있다. 이 땅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는 밴스뿐이다. 그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차석이었지만 대학에 가지도 못했다. 공부로도 대대로 물려오는 가난을 어쩌진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할머니'(글렌 클로즈)의 헌신이 있었기에 나쁜 친구들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대학 등록금을 벌기위해 해병대에 지원했다. 그 또한 자칫 지역성을 물려받을 뻔했다. 그리고 이는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밴스는 자라 과거 자신이 자란 땅에서 벗어난다.

<고령화 가족>은 어떠한가. 한국적인 이야기를 자주 했던 원작자 천명관은 '핏줄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영화는 이 길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평생을 가족으로 알고 살아왔던 이들은 사실 가족이 아닌 식구(食口)였다. 아버지가 부재한 식탁에서 엄마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며, 이들은 싸우고 화해한다. 그리고 갖은 사건을 겪으며 이들은 한국식 가정의 안빈과 행복으로 끝을 낸다.

그리고 여기서 분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고령화>와 달리 <힐빌리의 노래>에서는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밴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사회 현상을 읽을 수 있다. 왜 백인 노동층은 열악한 환경이 지속되었는가. 그리고 이 지속은 어떻게 끊을 수 있는가. 밴스는 공부와 개인의 노력(입대를 하는 등), 그리고 가족의 희생(고령화 가족에서 보여준 가족의 희생으로 주인공 인모가 공부했지만 실패한 인생을 산 것과는 반대로...), 그리고 지역을 탈출하는 것으로 벗어난다. 또한, 어머니와 할머니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달리 린지는 원만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보수성 짙은 레드넥(미남부 저소득, 저학력 백인의 멸칭) 집단에 새로운 문화의 유입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밴스 자신도 인도출신의 여성과 결혼한다).

이 두 영화를 같이 놓고 본다면 표면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지긋지긋하지만 결국은 가족. 글의 서두에서도 꺼냈듯, 가족과 연결된 영화는 특히나 이 지점을 공략해 보는 이의 공감을 얻어낸다. 그리고 결국엔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준다.(가족끼리 미워하라는 결말은 은밀하게 요구될 뿐) 특히나 이 지점에 대한 혐의는 <고령화 가족>이 짙다. 개인의 감상으로 지나쳐버리기 쉬워진다. 하지만 2020년도에 만들어진 <힐빌리의 노래>는 트럼프 이후 미국을 이야기한다. 작은 방향을 제시한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집단으로 은유되는 미국은 밴스 가족과 비슷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의 가족을 다루는 서사 중 엄마 중심의 서정 서사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서사를 보고 싶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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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Hillbilly Eleg

감독
론 하워드Ron Howard

 

출연
에이미 아담스Amy Adams
글렌 클로즈Glenn Close
가브리엘 바쏘Gabriel Basso
헤일리 베넷Haley Bennett

 

제공 넷플릭스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16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0.11.24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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