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언니전지현과 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내언니전지현과 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 선민혁
  • 승인 2020.12.10 10:3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뷰] "우리는 왜 그렇게 게임을 했을까?"
ⓒ 호우주의보
ⓒ 호우주의보

대부분의 80~90년대생은, 학창시절 온라인 RPG게임을 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컴퓨터부터 켠 적이 있었고, '바람의 나라', '네오다크세이버', '메이플스토리' 등에 접속하여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함께 사냥을 하고, 퀘스트를 클리어했으며 아이템을 주웠다. 친구들은 게임에 접속하고 플레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일상에 비해 그것이 훨씬 재미있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우리는 온라인 게임 속에서 겪은 안 좋은 일(사기, 해킹 등)로 힘들어하기도 했으며, 반복적인 사냥과 퀘스트에 무의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을 그냥 즐겼다고 하기에는 최적화된 캐릭터의 스텟을 맞추기 위해 주사위를 반복해서 돌리는 등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떤 게임이든 콘텐츠는 한정적이었고, 지루해질 때가 왔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게임을 했을까?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내언니전지현'은 박윤진 감독이 클래식 RPG게임 '일랜시아'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다. 1999년 넥슨에서 런칭한 '일랜시아'는 흥행에 실패하였고, 결국 운영진마저 없는 '망겜'이 되었다. 영화 한 편보다 용량이 작은 게임인 '일랜시아'에는 각종 버그가 발생하며, 유저들은 대부분 매크로를 사용한다. '일랜시아'를 10여 년 동안 하고 있는 내언니전지현, 박윤진 감독은 자신과 함께 '일랜시아'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왜 이 게임을 하는지 질문한다. 내언니전지현이 길드마스터로 있는 '마님은돌쇠만쌀줘'의 길드원인 이들은 박윤진 감독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일랜시아'를 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운영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일랜시아'를 왜 여태까지 플레이하고 있을까? 대답을 한 가지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 호우주의보
ⓒ 호우주의보

'일랜시아'에서는 사냥을 했다가 요리를 할 수 있으며 마법을 쓸 수도 있고 절벽에서 투신하더라도 다시 살아난다. 실제세계와는 달리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유토피아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마찬가지로, 캐릭터가 비공식적으로 정해져 있는 성장 루트를 철저히 따라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일랜시아'는 이들에게 현실의 피난처이면서도, 실제의 삶과 다를 것이 없는 또 다른 현실이다. 운영진이 없는 것이 불만이지만, 그 덕분에 거의 모든 유저가 매크로를 사용하여 편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운영진이 돌아오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매크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의 세계인 '일랜시아'는 어찌됐건 '마님은돌쇠만쌀줘' 길드원들을 비롯한 유저들에게 노스탤지어를 포함하고 있는 소중한 공간이며 가장 행복을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의 '일랜시아'에는 공동체가 있다.

'마님은돌쇠만쌀줘' 길드원들은 '일랜시아'에서 매크로를 돌리지 않는 시간 동안 함께 모험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은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하며 유대감을 쌓는다. 정모날에는 길드의 전통에 따라 게임 내의 절벽에서 자기소개를 한 후 투신하는 행위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러한 유대는 '일랜시아'라는 가상현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랜시아'에서 형성된 이들의 유대가 '일랜시아'밖 실제세계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영화는 '마님은돌쇠만쌀줘' 길드원들이 펜션으로 엠티를 가서 노는 장면과 게임 내에서의 정모 장면을 교차하여 편집함으로써 보여준다. 

 

ⓒ 호우주의보
ⓒ 호우주의보

그런데 이들의 유대가 시작되는 공간인 '일랜시아'에 전례 없던 위기가 닥친다. 운영진이 없는 '일랜시아'에 한 유저가 자신의 캐릭터를 만나면 게임이 종료되어버리는 악성 버그를 심은 것이다. 이 악성 유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다양한 곳에 자신의 캐릭터를 배치하고, 거의 모든 유저가 게임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 아무도 '일랜시아'를 즐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악성 버그에도 특별한 대처를 하지 않고 있는 유저들을 대신해 내언니전지현은 넥슨에 버그를 제보하고 고칠 것을 요구하여 '일랜시아'를 지켜낸다. 그리고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일랜시아'를 살려낸다. 

정식 개봉 전 인디다큐페스티벌을 비롯한 다수의 영화제에서 공개된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사람들이 잊혀진 '일랜시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한 것이다. 넥슨은 유저간담회를 개최한다. '일랜시아'에 운영진이 다시 돌아오고, 10여 년 만에 이벤트가 열린다.

나에게는 '마님은돌쇠만쌀줘' 길드원들의 '일랜시아' 같은 게임이 없다. 한 게임을 오래도록 하지 않았을뿐더러, 입시, 학업, 취업 등의 과정을 거치며 온라인 게임과 자연스럽게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오래된 친구와 함께 밤새도록 게임을 했었다. 땅을 파 광물을 캐고 좋은 터를 찾아 나무를 베어 집을 만들고, 다시 부수곤 했다. 3D인듯 2D인듯한 화면에서 그러한 행동들을 반복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 나눴던 쓸데없는 이야기들은 즐거웠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호우주의보
ⓒ 호우주의보

내언니전지현과 나
People in Elancia
감독
박윤진Yunjin Park

 

출연
박윤진Yunjin Park

 

제작|배급 호우주의보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86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0.12.0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ㄱㄷㄱㄷ 2020-12-13 01:31:28
굉장히 따뜻한 글이네요. 영화와 더 가까워진 듯 한 기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