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저블맨' 전복된 서사, 절시증과 관음에 관한 비판적 도약
'인비저블맨' 전복된 서사, 절시증과 관음에 관한 비판적 도약
  • 배명현
  • 승인 2020.12.0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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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에서 주체로"
ⓒ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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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각색한 <인비저블맨>(1933)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과학적 설정을 덧붙였다는데 그 의미가 깊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당대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 시대를 살펴보면 과학은 모든 것을 해결하리란 믿음이 유효했고 또 그렇듯 보였다. 물론 경제대공황이라는 위기가 1929년 찾아와 과학의 기술발전과 늘 진보만이 있으리란 역사의 발전사에 오점을 남기긴 했지만, 여전히 과학에 대한 믿음만큼은 공고했다. 세계 1,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진 말이다.

영화 이전까지 공상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에서 보여준 과학적 이상이 '쥘 베른'의 서사였다면,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웻스'의 소설 '투명인간'은 이를 부정한다. 투명인간 자체는 과학의 발전으로 탄생한 존재이지만 인간에게 그 어떤 긍정적 영향도 도움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준다. 그렇기에 <인비저블맨>(1933)은 그 시기에 새로운 서사를 제시했다는 데 있다. 영화는 '보이지 않음'이란 점을 이용해 인간 안에 숨겨진 은밀한 욕망을 실현함으로써 과학으로 인해 탄생한 부작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최초의 투명인간 영화가 공포라는 장르에 속해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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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20년 <인비저블맨>은 다시 한번 서사를 뒤집는다. 그동안 <투명인간>이 투명인간의 시각에 의존했다면 <인비저블맨>은 객체의 시선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조여 오는 공포를 보여준다. 시선의 객체란 두려움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상태이다. 이는 진화론과 연결되어있다. '보다'를 생존과 연결해 생각해보자. 이는 능동태로 포식자가 사냥감을 찾아내거나 초식 동물이 포식자를 발견해 도망칠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거꾸로 보여지다는 단어는 수동태로 잡아먹히는 것,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 사냥감의 위치에 놓여있던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보는 행위에서 권력적 쾌감 혹은 안전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인간은 본다는 행위를 갈망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보여지는 존재이다. 라캉이 설명했듯 영아란 실존적으로 무기력한 존재이다. 영아는 야생의 동물과는 다르게 우는 행위밖에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육아라는 행위가 없다면 생존을 유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여기서 다시 역설은 발생한다. 인간의 유전자는 보여지기를 두려워하지만, 육아는 봐야 한다. 늘 아이의 상태를 관찰해야 하고 그에 따른 대처를 해야 한다. 이 역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아는 늘 두려움을 품고 성장한다.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우리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낯을 가리고 방어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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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전적 상황과 역설적인 상황을 동시에 가지고 성장한 인간은 시선을 두려워한다. <인비저블맨>에서 주인공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를 호소하며 외부세계로 도망쳤으나 그곳에서조차 시선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이 '시선'에 대한 공포를 은유한다. 물론 여기엔 감독 겸 각본가 리 워넬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담으려 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엿보인다. 영화는 피사체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듯 하였으나 후반을 지나 러닝 타임의 끝에 다다르게 되면 시선의 주체를 모두 죽이고 이전의 '환경'을 제거한다. 이때 새로운 시선의 주체가 되는 것을 은유하는 마지막 엔딩은 꽤나 괜찮은 선택이었다. 세실리아의 시선은 관객(스크린 속 인물을 숨죽여 쳐다보는 절시증과 관음의 주체)을 쳐다봄으로써 관객을 투명인간으로 만든다.

그동안 투명인간이 절시증과 관음의 주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면 <인비저블맨>은 그 한계를 넘어 누가 진짜 절시증 환자인가를 까발린다. 그리고 이런 메타 영화적 요소가 영화의 폭을 넓힌다. 두 번의 진화로 시대를 따라온 혹은 한 발 더 빨리 다가온 투명인간의 이번 진화에도 나는 박수를 보낸다. 한 절시증 환자로부터.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유니버설 픽쳐스
ⓒ 유니버설 픽쳐스

인비저블맨
The Invisible Man
감독
리 워넬Leigh Whannell

출연
엘리자베스 모스Elisabeth Moss
올리버 잭슨 코헨Oliver Jackson-Cohen
알디스 호지Aldis Hodge
스톰 레이드Storm Reid

 

수입|배급 유니버셜 픽쳐스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24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0.02.26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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