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노크한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누군가 노크한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 코아르(CoAR) 편집부
  • 승인 2020.12.0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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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의 영화명장면]은 '코아르CoAR'의 필진들이 본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뽑은 명장면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이 글에는 줄거리, 해석, 비평보다는 '왜 그 장면이 여전히 머릿속에서 선명한지' 필자 스스로 되물으며, 감독의 카메라를 언어로 기록합니다.

[NETFLIX] <맹크 Mank>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2020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자넨 웃음거리에 불과해!"

'맹크'(게리 올드만)는 파티에 뒤늦게 참석한다.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맹크는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현대판 돈키호테를 영화로 각색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을 일갈하기 위한 사회적 우화이다. "(사람들에게) 이상을 주면 됩니다. 가난뱅이에 대공황에 지친 관객이 공감할만한 이상 말입니다. 주인공이 악덕 기업 활동을 반대한다고 합시다. (중략) 이런 사람을 뭐라 할까요? 열성적인 부정부패 고발자랍니다." 이에 대해 한 마디가 돌아온다. "헛소리로군" 그의 일갈은 용기가 넘쳤지만, 벽에 부닥친다. 그것이 계급인지 아니면 자본인지, 체제인지, 시스템인지, 아니면 권위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갑부 영화 제작자의 변태적 욕망 때문인지, 위선으로 가득한 파티 분위기 사이에서 홀로 플라스크를 따 술을 마실 정도로 거지 같은 시간 때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우화는 실패한다. 영화는 그 후에 맹크가 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정뱅이의 추한 모습이다. 이 때문에 그가 이전에 말한 내용은 전부 삭제된다.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영화 <맹크>는 여기에서 다시 시작한다. 두 갈래로 진행되던 영화는 맹크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의 순서를 교차로 보여주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안티고네 Antigone> 소피 데라스페 Sophie Deraspe|2019

ⓒ 그린나래미디어
ⓒ 그린나래미디어

'안티고네'(나에마 리치)는 이민자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캐나다에서 살아왔다. 그 때문에 그녀는 '캐나다의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큰 처벌을 받지 않고 금방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이다. 이것이 착각이었음은 첫 재판 장면에서 드러난다. 안티고네가 오빠를 탈옥시키는 범죄를 저지르고 마주한 행정의 세계는 그녀를 '캐나다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소녀' 이전에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은 이민자'로 분류한다. 안티고네는 처음 마주하는 세계가 가진 예상 밖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좌절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자 하는 가치의 소중함을 더 절실하게 느끼는 듯하다. 자신은 죄를 지었지만 잘못된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변호조차 거부하던 안티고네는 두 번째 재판 장면에서 당당히 외친다. 오빠를 도우라고 자신의 심장이 시키며, 언제든지 다시 법을 어길 것이라고. 이 장면 이후 영화는 관객들에게 조금씩 던져오던 질문의 속도를 높인다. 당신은 안티고네를 지지할 수 있을 것인가?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꿀벌과 천둥 Listen to the Universe> 이시카와 케이Ishikawa Kei|2019

© 2019 Movie <Listen to the Universe> Production Committee

'아카시'(마츠자카 토리)의 2차 예선이 끝났다. '아야'(마츠오카 마유)는 그의 연주에서 '무언가'를 느낀 듯 급하게 공연장을 빠져나온다. 이어 당장이라도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연습실을 찾는다. 그러나 이미 콩쿠르에 나갈 곡을 연습 중인 연주자들로 가득 차 빈방이 없다. 지금 당장 피아노를 치고 싶은 아야에게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여유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때마침 무대에서 내려온 아카시는 그런 아야에게 자신이 아는 곳을 소개한다. 어느 공방. 마치 고가구처럼 오래 배어든 소리, 부드럽고 좋은 소리가 나는 피아노가 아야를 맞이한다. 잠시 정적. 그곳을 비추는 달빛과 공방에 자리한 어둠이 교묘히 섞인다. 이윽고 아야의 연주가 시작되려는 찰나 창문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린다. "실례할게요!" 천연덕스럽게 '진'(스즈카 오지)이 뒷문으로 들어오더니 "피아노 치러 가는 것 같아서 따라왔어"라고 말한다. "같이 쳐도 돼?" 진의 등장에 아야는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가 치는 피아노 연주에 금세 빠져들고는 자연스럽게 옆에 앉고서 함께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시선은 창문 너머 하늘에 떠 있는 달을 향한다. 공방은 어느덧 두 사람만의 무대가 됐다. 두 개의 강이 만나 하나의 강을 이루듯 두 사람의 연주는 합을 이룬다. 한 번, 두 번 곡이 바뀌더니 어느덧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이 흘러나온다. 그 순간 미소를 머금은 두 사람의 얼굴에 달빛이 쏟아진다. 달빛(월광)을 들으면서 달빛을 본다는 것. 어쩌면 온 세상에서 오로지 이 장면만이 허락한 유일한 것임을 증명하려는 듯 스크린은 잔잔하게 달빛에 물든다. "<꿀벌과 천둥>이라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소리'를 보여주고 싶었다"¹⁾고 밝힌 이시카와 케이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음악을 매개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영화가 끝나도 여전히 귀가에 맴도는 주인공들의 연주 소리. 귀에 이어폰을 꽂고 무심코 찾아 듣게 되는 순간, 다시금 연주에 빠져드는 순간, 저곳의 소리가 이곳에도 존재했었다는 사실, 저곳의 세계(영화)와 이곳의 세계(현실)가 이어져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분명 기이한 경험이다.

1) <전혀 다른 4명의 피아니스트, 힘을 합쳐 음악에 도전하다>, 뉴스톱-홍상현의 인터뷰, 2020.11.12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

코아르(CoAR)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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