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몸값>(2015)으로 영화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신인 이충현 감독의 첫 장편영화, <콜>은 오랜만에 고향의 집으로 돌아온 서연(박신혜)이 낡은 집전화를 연결했다가 과거에 이 집에 살던 영숙(전종서)과 통화를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시간대를 연결하는 전화를 통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동갑내기 친구로 지내던 서연과 영숙은 점점 서로의 사연을 자세히 알게 된다. 영숙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서연과, 서연의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영숙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다가, 영숙의 싸이코패스적인 면모가 점점 드러나며 이들은 대립하게 된다.
전화기를 통해 과거와 연결되어, 현재 상황을 바꾼다는 것은 그리 신선한 설정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서연과 영숙이 서로의 시간에 영향을 주는 과정에서 필요한 논리는 부족한 편이다. 서연이 왜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것인지, 영숙의 캐릭터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 역시 충분하지 않다. <콜>은 개연성이 있는 영화라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 <콜>에게는 그것이 필요하지도 않다.
스토리의 전개와 인물에 대한 근거가 부족한데도, <콜>은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게 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까지, 한 순간도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가장 강력한 힘은 배우 전종서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연기한 영숙이라는 캐릭터에 대하여, 영화가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은 광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엄마(이엘)에 의해 방에 갇혀 지내며, 서태지를 좋아하고, 성격장애가 있는 스물여덟의 여성이라는 것 등일 뿐이다. 이러한 설정들만으로 관객들에게 그녀가 하는 잔혹한 행동들에 대한 동기를 이해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전종서의 연기는 관객들이 그것을 납득하게 만든다. 그녀의 눈빛과 말투, 표정, 걸음걸이는 영숙을 단지 잔혹한 일을 연쇄적으로 저지르는 빌런이 아닌, 살아있는 생생한 인물로 만든다. 전종서의 연기는 영숙이라는 캐릭터를 완성시켜 관객들이 영숙의 서사를 궁금하게 만들고, 화면 너머의 '영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그녀의 행동에 따라 펼쳐지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전체적인 스토리에 개연성이 없더라도 전종서가 완성시킨 영숙은 관객들을 순간마다 긴장에 빠지게 한다. 덕분에 다음에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는 전개는 일관성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지 않고 '스릴러'로서 의미가 생긴다. 공포 영화의 '클리셰'처럼 보일 여지가 있는 이 영화의 반전요소 또한 독보적인 연기로 완성되어 전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 영숙의 입을 통해 전해지자, '클래식'이 된다.
<콜>에서 전종서의 영숙이 가진 힘은 매우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다. 부족한 개연성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이외에도 더 있다. <콜>은 시각적, 청각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럽다. 서연과 영숙은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단지 다른 시대를 사는 것뿐만이 아니라, 서로 대비되는 일상을 가지고 있다. 따뜻한 가족이 있고, 자유가 있는 서연과 반대로 영숙은 자신을 괴롭게 하는 가족이 있고, 감금되어 있다. 영화는 영숙이 살고 있는 99년도의 집을 흥미롭게 묘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대비되는 서연과 영숙의 환경, 심리에 맞는 적절한 장면을 구성해낸다. 또한 영숙의 행동에 따라 변화하는 서연의 공간 역시 서연의 감정상태에 맞게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단순히 시간대만을 고려한 것이 아닌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반영한 색감과 질감으로 만들어진 공간들은 이 영화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야기'의 전형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콜>의 음악 역시 전형적인 공포, 스릴러 영화에서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영화는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를 낯설게 하기도 하며, 다양한 질감으로 이뤄졌으면서도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사운드들은 관객들을 서연과 영숙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고, 한눈팔지 못하게 한다.
<콜>에서 전종서가 강렬하게 표현하는 영숙의 반대편에는 서연이 있다. 배우 박신혜의 연기를 관객들은 가끔 논란으로 삼기도 하나 <콜>에서만큼은 적절한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박신혜는 서연을 통해 일상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를 납득할 수 있게 표현해낸다. 또한 전종서의 영숙이 끊임없이 발산하는 공격적인 에너지를 박신혜의 안정적인 서연이 중화 시켜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인 영숙이 뜬금없어 보이지 않게 한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스릴러 장르의 본연을 즐기면서도,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면, 지금 넷플릭스에 로그인하여 <콜>을 재생하기를 추천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콜
Call
감독
이충현
출연
박신혜
전종서
김성령
이엘
제공 넷플릭스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12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