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 내 심장이 시킨다
'안티고네' 내 심장이 시킨다
  • 선민혁
  • 승인 2020.11.25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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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심장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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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를 현대적 배경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고대 그리스의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유명한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딸로, 혈육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국법을 위반하고 비극을 맞게 되는 인물이다. 스스로 눈을 찔러 맹인이 된 후 테베를 떠난 오이디푸스를 따라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던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가 죽은 후 테베로 돌아온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오이디푸스가 테베를 떠난 후 왕위를 놓고 서로 싸우다가 둘 다 죽었고 이들의 숙부인 크레온이 테베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가 외국의 군대와 함께 테베를 공격했던 것을 근거로 그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매장을 금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이러한 법을 어기고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한다. 이를 알게 된 크레온에 의해 안티고네는 생매장의 형벌을 받게 되나, 형이 집행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속 안티고네의 사연은 이렇다.

소피 데라스페의 영화 <안티고네> 속 안티고네(나에마 리치)는 어떨까? 현대의 안티고네는 그리스가 아닌 캐나다 퀘벡에 살고 있다. 그런데 고대 안티고네의 테베와 달리 퀘벡은 현대 안티고네에게 고향이 아니다. 내전중인 고향에서 부모를 잃은 안티고네는 할머니와 두 오빠, 언니와 함께 고향 알제리를 떠나 퀘벡에 정착했다. 그들은 아직 시민권을 얻지는 못했지만 고향보다 안전한 이곳에서 평범하고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언니 이스메네(누르 벨리키아)는 미용실에서 일을 하며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고, 두 오빠 에테오클레스(하킴 브라히미), 폴리네이케스(리와드 엘-제인) 역시 돈벌이를 하여 집세를 내고 있다. 학업에 열심인 안티고네는 장학금까지 받아가며 고등학교에 다닌다. 이들은 부모를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서로 의지하고 위하며 새로운 땅에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는 한순간에 깨진다.

에테오클레스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폴리네이케스를 불심검문하던 중 함께 있던 에테오클레스가 휴대폰을 들고 다가오는 모습을 총을 꺼낸 것으로 오인하고 사격한다. 에테오클레스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흥분한 폴리네이케스는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수감되고, 출생지인 알제리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다. 안티고네는 작은오빠마저 잃을 수 없다며 폴리네이케스를 감옥에서 빼내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가족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폴리네이케스와 같은 문신을 한 뒤, 남자 옷을 입는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폴리네이케스가 수감된 감옥에 면회를 가서, 옷을 바꿔 입고 준비한 가발을 폴리네이케스에게 씌운 뒤, 할머니와 함께 나가게 한다. 오빠 대신 자신이 감옥으로 들어간 것이다. 안티고네는 미성년자인 자신은 이러한 일을 해도 쉽게 풀려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리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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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는 중범죄이기 때문에, 안티고네는 경찰 조사를 받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재판 절차를 밟게 된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쉽게 풀려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단순한 착각이었던 것이다. 행정의 세계에서 안티고네는 '캐나다에서 살아온 소녀' 이전에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은 이민자'로 분류된다. 안티고네는 처음 마주하는 낯선 세계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법정에서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재판초기, 변호를 받는 것조차 거부하며 당당히 자신의 유죄를 인정한다. 가족을 위해 기꺼이 범죄자가 될 것이며 이는 옳은 일이라는 것이다.

안티고네는 자신은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것이고, 억울하게 추방될 위기에 처한 오빠를 도우라고 심장이 시킨다고 말한다. 안티고네는 사건 초기 난민 범죄자라는 프레임에 씌워져 인터넷상에서 비난과 조롱을 당하고 있었으나,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남자친구 하에몬(앙투안느 데로쉬에)의 노력에 의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영웅이 되고, 안티고네가 법정에서 발언한 '심장이 시킨다'는 일종의 캐치프라이즈가 된다. 안티고네의 학급 친구들에서 시작해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안티고네를 지지하게 되고, 그녀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열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영화가 조금씩 던져오던 질문에 가까이 마주하게 된다. 당신은 안티고네를 지지할 수 있는가?

의외로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는 안티고네를 응원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안티고네의 행동을 정말 옳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는 조사과정에서 두 오빠의 악행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관객들이 이러한 찝찝함을 가질 수 있게 돕는다. 부조리하다고 여기는 제도를 어기면서까지 그것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안티고네와, '다수'의 안위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 사이에서 우리의 심장은 무엇을 시킬까?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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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

Antigone

감독
소피 데라스페 Sophie Deraspe

 

출연
나에마 리치 Nahema Ricci

라와드 엘-제인 Rawad El-Zein

앙투안느 데로쉬에 Antoine Desrochers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09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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