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을 채우는 흥미로운 인물들
스크린을 채우는 흥미로운 인물들
  • 코아르(CoAR) 편집부
  • 승인 2020.11.1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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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의 영화명장면]은 '코아르CoAR'의 필진들이 본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뽑은 명장면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이 글에는 줄거리, 해석, 비평보다는 '왜 그 장면이 여전히 머릿속에서 선명한지' 필자 스스로 되물으며, 감독의 카메라를 언어로 기록합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SAMJIN COMPANY ENGLISH CLASS> 이종필|2020

ⓒ 롯데엔터테인먼트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초반,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각자 사무실의 상사들에게 커스터마이징 된 커피, 프림, 설탕의 비율을 엄수하며 커피를 탄다. 시간 단축 성공에 기뻐하는 자영(도로시)에게 유나(미쉘)는 참 대단하다며 반어적 표현을 하고는, 여성이 일을 하게 된 히스토리에 대해 동료들에게 연설한다. 퇴직금으로 배낭여행이나 가자는 유나의 말에, 보람(실비아)은 퇴직금을 암산으로 계산해낸다.

영화는 이 한 장면에서,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세 주요 인물의 캐릭터를 심플하게 표현한다. 이 한 장면만으로 인물들의 캐릭터가 모두 설명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장면에서 표현된 캐릭터들이 극의 진행에 따라 다양한 사건들을 마주해도 일관성 있게 유지되며 각 캐릭터들끼리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캐릭터들은 초반 장면들에서 나타나는 간단하고도 명확한 특징을 기반으로 점차 설득력을 쌓아가며 스토리 전개의 근거가 되기까지 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The Trial of the Chicago 7> 아론 소킨Aaron Sorkin|2020

ⓒ NETFLIX
ⓒ NETFLIX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 중이다. 그들의 맞은편에 창 하나를 두고 파티가 진행 중이다. 이 쇼트가 등장하면서부터 영화는 이상해진다. 초현실적이나 판타지스런 부분 하나 드러나지 않지만 환상성이 짙어진다. 이 순간, 영화가 아닌 극의 특징을 띄게 된다. 영화에서 50년대와 60년대라고 표현된다. 창 하나를 대치해놓고 격변의 시기를 사는 미국과 안락한 미국이 나뉘어져 있다. 10년의 차가 창이라는 -시각적으론 투명하지만 물질적으론 닿을 수 없는- 것으로 두 세계가 유리되어 있다. 미 보수와 기존의 규칙과 규범을 따르려는 이들, 그에 반하는 젊은 히피와 그들의 그루피들을 시각적으로 확연하게 나누었다. 

하지만 이 순간 파티장 안에 있던 한 사람이 말한다. "저 창밖의 광경은 나만 보이는 거야?" 그리고 몇 초 뒤 유리창이 깨어지고 파티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유리창이 깨어지면서 두 계급은 섞이게 된다. 섞임은 혼란이다. 시카고의 7인에 대한 시위는 세대 갈들, 계급 갈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두 계급은 혼란으로 만났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시위대를 알아차린 유일한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상위 계급자 중 가장 처음 하위 계급에 관심을 가진 사람? 아니면 상위 계급자들을 위한 사이렌? 물론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순 있겠지만, 나는 회의적인 쪽에 가깝다. 알아차린 것만으로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25th BIFF] <베로니카 La Veronica> 레오나르도 메델 Leonardo MEDEL|2020

ⓒ cinemachile
ⓒ cinemachile

고급 스포츠카에 탄 '베로니카'(마리아나 디 지롤라모). 그녀는 스포츠카 매장에서 남편에게 줄 차를 고르는 중이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생각에 잠긴 걸까. 차가 비싸서? 글쎄. 유명 축구선수의 아내이면서 인기 있는 모델인 그녀는 수영장 딸린 집에 가정부를 두고 온종일 놀 만큼 부유하다. 그렇다면 남편을 향한 사랑이 식은 탓일까? 음. 그녀는 자신의 갓 태어난 딸 아만다를 질투할 만큼 남편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어떠한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슬픈 눈을 한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욕망하는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분명 SNS 속 허세 가득한 사진들 중 하나임에 분명한데도, 관객인 우린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그녀의 내면으로 다가가기 위해 애를 쓴다.

칠레 출신 영화감독 '레오나르도 메델'은 53개의 베로니카 라라의 얼굴 샷들로 <베로티카>를 구성한다. 앞서 언급한 베로니카의 얼굴은 53개 중 하나의 장면이면서, 베로니카가 짓는 53개의 표정 중 하나다. 어쩌면 영화를 보는 것은 53개의 SNS 피드를 보는 것처럼 다가온다. 베로니카의 얼굴은 스크린의 외부, 즉 외화면의 세계를 상상하기 위한 유일한 단서다. 메델은 영화에 대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 SNS가 어떤 의미인지 말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거대한 스크린으로 보는 베로니카의 SNS 피드. 이 기이함은 분명 베로니카가 아닌 베로니카처럼 정사각형의 이미지에 열광하며 좋어요 수와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는 관객 자신의 모습 때문일지도.

<베로니카>는 라틴 아메리카 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성 '마리아나 디 지롤라모'가 주인공 베로니카 라라를 맡아 SNS 뒤에 숨겨진 인간의 추악함을 그려낸다. 오로지 표정과 대화만으로 인물을 그려내야 하는 제한적인 작업 방식에도 인물의 욕망과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는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다. 관객인 우린 그녀의 얼굴을 통해서 영화와 호흡한다. 다양한 표정, 매력적인 눈빛 등 스크린의 여백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배우로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선보이는 '디 지롤라모'. '배우를 보기 위해서 영화를 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배우의 연기가 다 한 영화.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코아르(CoAR)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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