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세계가 보고 있다
[NETFLIX]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세계가 보고 있다
  • 배명현
  • 승인 2020.11.09 0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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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새로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1.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아론 소킨'의 서사

아론 소킨의 신작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 공개되었다. 시기는 그야말로 시의적절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약 3주 남긴 시점이었다. 1968년 미 민주당 전당대회에 관한 재판을 기반으로 한 내용은 현재 2020의 미국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바다 건너 한국에서의 이야기와도 그리 다르지 않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과거이자 현재이다.

영화의 시작은 유쾌한 음악과 음울한 인트로 영상이다. 빠른 장면의 전환으로 리듬을 만들어내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루터 킹의 연설, 미국의 징병 발표, 케네디의 연설, 베트남의 모습. 그다음은 미 민주당과 신좌파의 대표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시카고에서 있을 시위를 준비한다. 비폭력 시위를 외치는 이들 사이에 흑표당의 창립자 보비가 어처구니없이 엮어 들어 간다. 권총조차 소지하지 않았던 그는 폭력 혐의로 잡혀 들어가게 된다.

영화는 시위 장면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아론 소킨은 다음 장면으로 검사와 이들 무리의 대화를 잡는다. "이제 어른들이 돌아왔으니 앞으로 이 막돼먹은 호모들을 국가 안보의 위협으로 간주할 거야" 이 영화에서 대사는 이미 판결은 결정된 상태이며 앞으로 사회가 흘러갈 방향성을 견지해준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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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애비 호프먼'(사챠 바론 코헨)과 '제리 루빈'(제레미 스트롱)이 법정으로 입장한다. 앞으로 모든 일이 벌어질 중심부인 법정으로 영화가 입장하는 것이다. 이때 계란 하나가 이 두 사람에게 던져진다. 루빈은 이 계란을 받으며 말한다. "경험이지" 하지만 이 계란을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를 알지는 못한다. 경험이 없는 이 재판과 앞으로의 일들을 암시하는 강력한 복선이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아이러니는 이것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있다. 실화 바탕의 영화의 치명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서 아론 소킨의 재기와 재치가 발휘된다. 그는 오로지 '법정'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법적인 결과보단 과정에서 있을 부조리를 지독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진행은 빈틈이 없다. 대화로 진행되는 플롯은 치밀하게 구성되어있다. 화면의 전환 또한 허투루 쓰지 않는다. 대화가 주로 진행되는 경우 지루해지는 경우가 많은지만, 소킨은 자신의 탁월함이 시나리오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거침없이 보여준다. 중간중간 <12인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1957, 감독 시드니 루멧) 혹은 <숏 컷 Short Cuts>(1993,로버트 알트만)에서 오마주한 화면이 눈에 띄며 '아는 사람을 위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리듬감이다. 특히 '재판장'과 '애비와 루빈의 연설' 그리고 '잠입한 경찰들'을 한 데로 엮는 부분의 타이밍과 자연스러운 연결 솜씨는 그야말로 감탄이 나온다.

 

ⓒ socialnews.xyz
케이틀린 피츠제럴드, 아론 소킨 ⓒ socialnews.xyz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 순서 뒤에 오는 다음 씬이다. 시간을 과거로 돌려 제리와 그에게 접근한 FBI요원 '데프니 오코너'(케이틀린 피츠제럴드)를 보여준다. 소킨은 현재로 돌아와 법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간을 과거로 넘겨 그 배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의 구성을 복잡하게 꼬았다. 과거와 현재의 반복이 아닌 다층적 구성을 완성하여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여러 층위의 작은 플롯들을 끼워 넣었다. 창작자로서 탁월한 감각과 센스가 엿보이는 점이다.

또한, 러닝타임 중간에 삽입되는 '전 법무부 장관 클라크의 집'에서의 일화도 작은 에피소드와 같이 다루어져 이야기의 풍부함을 더했다. '클라크'(마이클 키튼)가 증인석에 서겠다고 승인하는 과정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이야기의 끝에는 카타르시스를 부여한다. 승인하는 대답을 인용으로 전달하는 방식 또한 유머러스하다.

하지만 감독은 호락호락하게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절정에 관객이 긴장감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도록 위기를 강하게 배치한다. 하지만 이 위기는 법정의 부조리가 아닌 내부의 부조리이다. 때문에 인물들에게 갈등이 더욱 강력하게 작용한다. '톰 헤이든'(에디 레드메인)의 목소리가 증거물로 제출되면서 내부 전체가 흔들린다. 이때, 소킨은 사무실 안에서 일어나는 가상의 재판소를 만들고 격정적인 대화로 사건을 복기하게 만든다. 그리고 교차 편집되는 시위대 씬과 엮이며 긴장감은 급박해진다.

 

2.

재판장 안의 분위기는 고조된다. 판사는 자신의 성과 비슷한 피고인에 대해 명시적으로 비판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미 법정에서 정치적 중립은 사라졌으며, 판사의 방향은 판결이 시작도 되기 전에 시작되었다. 시카고의 7인과 함께 정치적 움직임을 위해 묶여버린 보비 실은 자신이 변호인도 없다는 사실을 피력하지만 이미 무용한 일이 되어버렸다.

 

내 말 잘들어,

너희 둘은 단 5분 만에 우릴 딱 슐츠 검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어.

-톰 헤이든-

VS

혁명이란 이런 거지 진짜 혁명, 문화 혁명 말이야.

-애비 호프먼-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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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씬으로 연결된 휴식시간의 미장센은 흥미롭다. '불타는 배' 그림이 걸린 방에서 '톰 헤이든'(에디 레드메인)은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과 대비된다. 쇼트 안에 그는 홀로 있고, 180도 법칙을 따라 그와 대비되는 나머지 인물들이 잡힌다. 이 좁은 방안에서 쇼트는 리듬감 넘치게 인물들을 나누어 담으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성과 합리 그리고 설득에 목적을 둔 헤이든과 자신들의 업을 이루려 과감하게 행동하는 애비 호프먼(사챠 바론 코헨)과 제리 루빈(제레미 스트롱)은 서로 다른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다. 영화 후반에서 반전처럼 보여지는 분노에 찬 톰 헤이든의 선동 장면 전까지 그는 계속해서 '중도'에 가까운 입장을 보인다.

 

이건 정치 재판이에요.

정치 재판이라 이미 결론을 정해놓았다고요.

그 사실을 외면한다는 게 좀 어이없네요.

-애비 호프먼-

VS

재판엔 민사 재판이 있고 형사 재판이 있어.

정치 재판이란 건 이 세상에 없어.

-윌리엄 컨슬러-

하지만 여기에서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변호인 윌리엄 컨슬러(마크 라이런스)이다. 그는 시카고 7인에게 호의적인 배심원이 조작에 의해 제외되는 판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사건의 중심은 톰 헤이든과 애비 호프먼 그리고 제리 루빈의 행동 이후에 기반해 있지만, 재판의 중심은 컨슬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비중에서 그의 역할은 정해진 결과에 반하는 정의의 기준에 있다. 그리고 이 정치 재판에 있어 유일하게 판사에 대립할 수 있는 역량이 주어진 인물이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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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역시 정치 재판임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는 전 법무부 장관 램지 클라크를 증인으로 불러 세우기까지 한다. 컨슬러는 판사 앞에서 법전을 던지는 행위로 기존의 법제와 미보수 사회에 대한 반감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의 말들은 판사의 말에 가로막혀 실질적 효용은 없었지만, 배심원과 법원에 참석한 인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심지어 배심원들이 없는 틈에 증인 램지 클라크의 증언을 지워버린 판사이지만 그조차도 재판 참관인을 지우지는 못했다. 역사에는 늘 지울 수 없는 관찰자가 있었다. 요컨대 미시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혼자서 했을까?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무찔렀다.

그는 취사병 하나쯤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 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했을 때 울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말고 승리한 자는 없을까?

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십 년마다 큰 인물이 나온다.

그 비용은 누가 댔을까?

이렇게 많은 보고들.

이렇게 많은 의문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中에서 

여기서 영화는 본래의 진가가 드러난다. 러닝타임 초반에도 나왔듯이 "세계가 보고 있다"는 시위 타이틀은 영화 전체를 통과한다. 시위대에게 세계란 특정 인물이 아닌 민중이다. 그 때문에 브레히트의 시와 시위대의 멘트는 민중사관과 긴밀한 접점이 드러난다. 세계를 구축하는 이들은 권력자가 미리 만들어 놓은 결과에 반한다. 또한 실제로 그 결과가 판결로 이루어졌다손 치더라도 민중들은 '사실'을 기억한다. 그 사실이 얼마나 비열하고 끔찍하고 폭력적으로 쓰여졌는가. 그리고 영화 끝에 읽히는 4,752명의 이름이 그 증거이다.

세계는 이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고 복기한다. 그리고 이 영화 시카고의 7인은 2020년에 민중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다시 등장했다. 트럼프가 몰락한 이 시기에 등장한 과거의 서사는 새롭게 읽히길 바라고 있다.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은 2021년의 새로운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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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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