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th BIFF] '우리 아버지' 진실과 대면하기
[25th BIFF] '우리 아버지' 진실과 대면하기
  • 오세준
  • 승인 2020.11.06 1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우리 아버지'(Padrenostro, 이탈리아, 2020, 123분)
감독 '클라우디오 노체'(Claudio NOCE)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1976년, 이탈리아 로마. 어느 날 아침 총소리가 적막을 깬다. 금발의 10살 소년 '발레리노'(Mattia Garaci)는 부리나케 창밖으로 향한다. 경찰 부국장인 아버지 '알폰소'(Pierfrancesco Favino)가 공산주의 무장 프롤레타리아의 테러로 총상을 당하고, 테러리스트 중 한 명이 사망한다. 그날 이후 무사히 치료를 받아 회복한 알폰소와 달리, 발레리노는 공황장애로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겪는다. 아버지 알폰소 주위를 맴도는 죽음의 그림자가 아들 발레리노에게까지 머문 것. 알폰소와 지나 부부는 발레리노가 그날의 사건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해 TV나 신문을 보지 못하게 하고, 학교를 잠시 쉬게 하는 등 가족에게 일어난 테러를 숨기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발레리노의 불안증세는 더욱더 심해진다.

발레리노는 우연히 낡은 티셔츠와 청바지, 갈색 가죽가방을 멘 소년 '크리스티안'(Francesco Gheghi)을 만나 급속도로 친해진다. 발레리노는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아버지가 테러를 당했던 일을 크리스티안에게 고백한다. 그는 크레파스로 직접 그날의 현장을 길 위에 고스란히 묘사한다. 아버지가 총을 맞아 쓰러진 모습과 피가 쏟아지며 죽은 테러리스트까지. 발레리노의 고백이 끝났을 때, 크리스티안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부모인 알폰소와 지나가 서 있다. 아들이 그날 벌어진 일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부부. 최근 불안한 증세를 보였던 아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부는 알폰소의 부모와 친척들이 사는 칼라브리아로 떠난다.

발레리노는 할아버지, 할머니뿐만 아니라 여러 친척과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고, 가족끼리 바닷가로 놀러 나가는 등 그렇게 아버지의 옛집에서 조금씩 회복해 나아간다. 홀로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 위를 달리던 그는 신기하게도 크리스티안을 마주한다. 두 소년은 바다와 숲 이곳저곳을 누비며 시간을 보내고, 피의 맹세를 통해 서로에게 영원한 친구가 될 것을 약속한다. 어느덧 크리스티안은 발레리노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가족 모임에 초대받아 축구를 하는 등 발레리노가 머무는 공간에 머물게 된다. 그런 크리스티안이 자신의 아버지 알폰소와 가까워지는 모습을 본 발레리노는 약간의 질투심을 느끼고, 그와 다투게 된다.

 

ⓒ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크리스티안은 그런 발레리노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 그가 늘 메고 다녔던 '갈색 가방'을 방에 남긴 채 떠난다. 그 안에는 '알폰소가 테러를 당했다'는 기사가 실린 여러 장의 신문과 가족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충격적이게도 사진 속 크리스티안의 아버지는 알폰소에게 테러를 벌이다 죽은 그 테러리스트였다.

<우리 아버지>는 이탈리아 감독 클라우디오 노체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이 작품은 감독이자 시나리오를 쓴 클라우디오 노체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경찰 부국장이었던 아버지가 거리에서 총격을 당한 기억을 기반으로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발레리노는 분명 노체의 또 다른 자아인 셈이다. 전작 <더 아이스 포레스트>(2014)에서 한 기술자가 발전소를 고치기 위해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국경 사이의 한 시골 마을에 도착하면서 한 난민을 통해 실종, 죽음, 인신매매 등 그 국경 마을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렸던 노체는, 이번엔 테러를 통해 아버지가 다치고, 누군가 죽게 되는 순간을 목격한 '한 소년'의 기억을 펼쳐낸다.

노체는 인간의 내면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스크린 위에 올려놓고자 한다. <더 아이스 포레스트>의 경우, 첫 장면에서 보스니아 난민 형제가 인신매매범에게 쫓겨 달아나다 형은 죽고 동생은 살아남는 모습(과거)을 보여준다. 이어 갑자기 발전소를 향하는 한 기술자의 모습(현재)으로 컷이 바뀌는데, 이때의 단절감은 관객에게 한 인물을 매개로 하여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자 하는 욕구를 유발하도록 만든다. <우리 아버지>는 좀 더 친절하게도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한 성인인 '두 남성'을 시작으로(현재), 발레리노의 시선을 통해서 이야기(과거)를 펼치며, 영화 처음에 등장한 그 두 사람이 '발레리오와 크리스티안'이라는 것을 액자형식으로 풀어낸다.

<우리 아버지>는 '알폰소가 테러를 당한 시퀀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아버지의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한 뒤로 발레리오가 느끼는 불안이 어느 지점에서 발생하고, 또 어느 지점에서 해소가 되는지. 또 그러한 발레리오 시선 속에서 머무는 아버지 알폰소의 존재를 탐구하고, 더 나아가 '가족'으로까지 확장해 일종의 가족 드라마를 그려낸다. 영화는 소년의 시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당시 이탈리아의 기독교민주당과 이탈리아 공산당의 정치‧이념‧종교적 대립'(납탑 시대)을 철저히 배제시킨다. 영화가 조명하는 것은 시대가 아닌, 시대 위에 놓인 인물들 각각의 주체성과 그들의 이행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발레리노가 창문을 통해서 알폰소가 테러를 당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행위는 마치 아들의 세계가 아버지의 세계를 창문을 통해 엿보는 것, 혹은 아버지의 세계가 아들의 세계의 창문 틈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이다. 발레리노가 알폰소를 볼 때마다 느끼는 불안은 아버지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는 불안일 것. 특히, 로마에서 칼라브리아로 떠나는 길에서 터널 안으로 들어선 순간, 발레리노의 공황장애가 폭발하고, 알폰소가 그런 아들을 감싸 안으며 고조된 불안을 완화시키는 모습은 노체가 의도적으로 그려낸 장면이다. 알폰소의 아들, 즉 어린이(중립적인 주체)의 시선과 존재가 영화 안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관객의 우리의 눈 또한 이탈하지 않고 스크린 안에 머물게 된다.

그러면서도 '크리스티안'의 존재가 결정적인 순간에 유령처럼 사라지는 탓에, 마치 발레리노가 정신장애에 따른 가상의 인물로 보이는 듯 그려지지만, 알폰소와 마주한 순간 그 소년의 존재에 관한 의심이 멈추고 '그는 누구의 아들인가'라는 질문으로 관찰하게 된다. 그 답이 다시 '알폰소가 테러를 당하는 순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다시 현재로 돌아왔을 때, 영화는 크리스티안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아버지의 아들에게 향하는 복수가 아닌, '친구'라는 단 두 글자가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뜨거운 포옹. 두 사람의 관계에서 '진실'은 피로 얼룩진 이전 세대들이 남긴 역사가 아닌 오로지 그들이 만든 '우정'이라는 역사 단 하나다.

이처럼 <우리 아버지>는 비극적인 시작과 달리,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른이 된 발레리노와 크리스티안이 지하 깊숙한 터널을 지나 지하철에서 내려 우연히 마주한 순간(안)과 조우한 상태로 함께 지상으로 올라가는 순간(밖)으로 연결되는 영화의 구조를 통해서, 정치-사회적 맥락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촬영 감독 미켈레 다아타나시오(Michele D' Attanasio)의 화려하고 유려한 카메라워크가 돋보이며,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일으키는 클라우디오 노체의 연출과 내러티브에는 풍부한 표현력으로 가득 차 있다.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Volpi Cup-Best Actor)을 받았다.

 

ⓒ 영화 '우리 아버지' 포스터
ⓒ 영화 '우리 아버지' 포스터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