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캐릭터가 올리는 고득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캐릭터가 올리는 고득점
  • 선민혁
  • 승인 2020.11.04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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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SAMJIN COMPANY ENGLISH CLASS, 한국, 2020, 110분)
감독 '이종필'

한 사람의 일생에는 많은 사연이 있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에는 여러 사정이 있다. 영화는 사람과 세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복잡한 인간과 세계에 대하여, 영화는 할 말이 많지만, 보통은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 그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대한 많이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여성, 학벌, 환경, 기업과 사회의 관계 등 여러 이슈들을 다루고자 하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제목이 맥거핀으로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방향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유한한 러닝타임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하는 시도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관객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어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 관객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캐릭터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토익으로 치면 800점 이상이라고 할 만하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살아있다. 이자영(고아성), 정유나(이솜), 심보람(박혜수) 세 주인공이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을 만든 주요한 사건 등을 보여주는 플래시백이 이 영화에는 없다. 그러나 필요도 없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어도 관객들이 그것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명의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서사가 있다. 영화는 그것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설정해 놓았기에 인물들은 사건에 대해 각자 가지고 있는 서사에 따라 일관되게 반응하여 관객들이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캐릭터를 이해한 관객들은 인물에게 이입할 수 있게 된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각자의 서사를 가진 진짜 사람 같은 캐릭터들은 심지어 조화롭다. 특히 스토리 전개를 이끌어 나가는 세 주인공의 밸런스가 잘 맞는다. 이들이 가진 각자의 사연은 적절한 순간에 과하지 않게 드러나며 한명한명 명확하게 가지고 있는 개성은 이들이 겪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든다. 주인공 뿐만 아닌 주변의 인물들도 적당한 타이밍에 역할을 하며 전개에 재미를 더한다. 영화에서 캐릭터가 이러한 기능을 한다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다수의 등장인물이 모두 각자의 명확한 개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영화에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이 없으며 소모되는 캐릭터도 없다. 비중이 적은 인물이더라도, 대충 만들어진 캐릭터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들의 동기 중 한명인 송소라(이주영)나 마케팅부서의 반은경 부장(배혜선), 생산관리부서의 홍수철 과장(이성욱)은 등장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도 명확한 인상을 남기며 관객들이 그들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하게 그들의 캐릭터가 주장되지도 않는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에게 근거가 있는 덕에 다소 클리셰적인 장면들도 '고전적인 재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된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tiny tiny' 한 다수가 포기하지 않고 'great' 한 일을 해내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여러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110분 안에 모두 이야기하려다 보니, 메시지 하나 하나에 깊이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 같은, 혹은 우리 근처의 사람들 같은 생생한 인물들이 그것들을 이야기해주는 덕에, 전달은 효과적이다. 영화가 과하게 많은 말을 하려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고, 사연 많은 인생들과 복잡한 사정의 세계를 충실히 보여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드러나게 된 것으로 느껴진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누군가에게는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부조리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들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학벌 이슈를 다룬 영화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회에서 기업이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보는 이에게 어떤 영화가 되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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