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th BIFF] '성스러운 물' 쪼개진 환상
[25th BIFF] '성스러운 물' 쪼개진 환상
  • 오세준
  • 승인 2020.11.03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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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스러운 물'(Drowning in Holy Water, 아프가니스탄·이란, 2020, 85분)
감독 '나비드 마흐무디'(Navid MAHMOUDI)
ⓒ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하메드'(Matin HEYDARNIA)와 '로나'(Sadaf Asgari)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중이다. 하메드는 독일에 있는 형과 함께 살고자 하는 목표를 가졌다. 로나는 수영선수가 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목표와 꿈을 가지고 위험천만한 망명길에 올랐다. 그리고 어느덧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유럽 밀입국의 마지막 종착지인 '이란'을 향한 트럭에는 두 사람과 같은 처지의 난민들이 십여 명 정도 타고 있다. 곧이어 한 난민 브로커의 창고로 도착하고 그들은 쇠창살에 가두어진다. 브로커는 그들의 가족이나 친인척, 친구, 지인 등으로부터 돈을 건네받아야 풀어준다. 까딱하다 돈이 늦거나 주지 못한다면, 또 다른 브로커에게 팔린 채 어디론가 이동한다. 이렇듯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는 길은 비참하고 험난하다. 유럽으로 가는 길목마다 난민 브로커 비즈니스가 장악하고 있다.

다행히 형의 친구인 '소흐람'(Ali Shadman)이 하메드가 유럽으로 갈 수 있도록 돈을 지불한다. 이 돈은 하메드의 형이 준 돈이다. 로나는 하메드가 떠나기 전, 독일에서 연락 가능한 SNS를 공유하면서 자신의 손목에 찬 팔찌를 건넨다. 이별의 순간도 잠시, 브로커는 소흐람이 준 돈의 절반이 가짜 돈인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 하메드를 가두려 한다. 무사히 빠져나온 하메드는 소흐람과 그의 여동생(Neda Jebraeili)이 사는 집으로 향한다. 하메드는 소흐람을 따라 이란에 정착한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던 중 유럽으로 갔다가 도망치듯 이란으로 온 소흐람의 동생의 말을 듣게 된다. 독일로 무사히 가기 위해서 이슬람교가 아닌 기독교를 믿고 있다고 말해야 했던 사정과 함께 레즈비언으로 지내야 했던 고통스러운 경험.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에서 자신의 신념을 저버린 채 살아야 하는 삶이 절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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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드는 우연히 로라를 발견한다. 그 순간 로라의 오빠로 추정되는 남자들이 그녀를 납치해 달아난다. 하메드는 그날 밤 온종일 로라를 찾는다. 그러나 그는 곧장 독일로 가야 하는 상황. 그는 이란에 남아 로라를 찾을 것인지. 형이 있는 독일로 향할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결말부에 영화가 보여주는 낯선 장면이 있다. 카메라는 다큐멘터리적 시점이다. 다수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서 있다. 한 사람씩 자신의 사정을 토로하면서, 로라를 언급한다. 이 장면은 언뜻 실종 관련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나올 법한 '인터뷰 형식'이다. 더욱이 놀라운 점은 분명 독일로 떠난 '하메드'도 무리 중에 있다는 것이다. 하메드의 행로를 따라갔던 카메라가 순간 이탈한 것이다. 이 이질적임은 순간 관객인 우리에게 혼란을 준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였나?" 그러나 하메드가 로라를 언급하면서 카메라의 시선은 경찰의 시선임을 알게 된다. 경찰은 어느 길목에 있는 강가에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어 수사 중으로, 온몸이 검게 그을려 신원 확인 어려운 찰나에 그 여성이 로라임을 입증할 사람들을 찾은 것이다.

하메드는 독일로의 망명을 포기한 채, 경찰에 붙잡혀 이란에서 추방될 수 있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검게 그을린 로라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나선다. 그리고 그 시신의 손목에서 하메드는 로라에게 받은 팔찌의 한 짝을 발견한다. 비극적이게도 그 시신은 로라였던 것이다. 이때 영화는 한차례 하메드에게 로라의 숨겨진 비밀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녀의 가방에서 나온 성경이다. 이윽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로라의 죽음은 두 가지 정도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로 그녀가 약혼을 파기하고 도망쳐 가족들에게 붙잡힌 것, 둘째로 무슬림 대신 기독교를 선택하여 가족들에게 붙잡힌 것이다. 결국, 로라는 가족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것으로, 이는 '가족에게 불명예를 가져다줬다고 생각되는 여자 가족 구성원을 남자 가족 구성원들이 죽이는 행위', 즉 무슬림 명예살인'의 한 단면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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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물>이 보여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난민 수송으로 돈을 벌려는 조직'과 '독일로 가려는 난민의 꿈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이라는 것'. 전자는 돈이 없으면, 또 그 돈을 가지고 수송을 해 줄 브로커가 없으면, 유럽으로 건너갈 수 없다는 것을 영화 속 난민들을 통해 처연하게 보여진다. 후자의 경우, 슬라보예 지젝의 견해를 빌려 말하자면, "요컨대 난민은 케이크를 얻고자 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서구복지국가의 최상의 혜택을 누리기 원하지만 복지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이데올로기와 부분적으로 전혀 합치하지 않는 자신의 생활방식을 고집하고 이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새로운 계급투쟁>, 슬라보예 지젝, 자음과 모음, p67] 이런 점에서 보면, 소흐람의 여동생은 그녀가 서구에서 퇴출되어진 것이 아닌 자의적으로 도망친 점에서 내재된 갈등을 은폐한 환상의 결과인 것이다.

하메드의 선택에는 단순히 노라를 향한 사랑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메드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독일을 꿈꾼다. 그러면서도 소흐람의 여동생을 보면서 독일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하메드가 노라의 가방에서 성경을 확인하는 결말은 개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의 그릇된 문화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함에 있다. 더욱이 성경을 본 하메드가 그러한 로라의 죽음을 자신의 종교적 가치관으로 묵인할 수 있다는 점까지 보여주려는 듯하다. <성스러운 물>은 유럽 비자를 받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수많은 문제들을 겪으면서 무슬림으로 계속 살아가는 것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를 그린 작품이다. '나비드 마흐무디' 감독이 연출했으며, 형인 잠시드 마흐무디(Jamshid MAHMOUDI)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마흐무디 형제'는 이란 테헤란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프가니스탄 감독들로 다양한 영화 및 TV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지석상'을 수상했다.

 

ⓒ 영화 '성스러운 물' 포스터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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