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갔어, 버나뎃> 관계에서 찾을 수 없다면
<어디갔어, 버나뎃> 관계에서 찾을 수 없다면
  • 선민혁
  • 승인 2020.10.2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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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디갔어, 버나뎃'(Where'd You Go, Bernadette, 미국, 2019, 109분)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

 

사탕처럼 달콤하다는데 / 하늘을 나는 것 같다는데

트와이스 <What is Love?> 中

사랑이 무엇일까? <어디갔어, 버나뎃>에는 서로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족이 등장한다. 학창시절부터 연애한 끝에 결혼한 버나뎃(케이트 블란쳇)과 엘진(빌리 크루덥)은 각자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그들 사이에는 명랑하고 부모에게 친근한 딸 비(엠마 넬슨)가 있다.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게 된 비는 버나뎃과 엘진에게 성적을 유지한 것에 대한 선물로 남극 가족여행을 요구한다. 남극여행이 내키지 않는 버나뎃과 엘진이 사랑하는 딸을 실망시킬 수 없어 허락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비의 남극여행 제안을 받아들인 이후 버나뎃의 일상은 남극여행에 대한 불안함으로 채워진다. 크루즈 안에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멀미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 등 버나뎃의 머릿속은 걱정들로 가득하고 버나뎃은 결국 자신이 남극여행에서 빠지는 계획까지 세우게 된다. 그런데 버나뎃이 가진 내면의 불안이 남극여행을 가기로 한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 (주)디스테이션

건축계의 전설인 자신이 직접 설계한 집에서 IT업계의 거물인 남편, 우등생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버나뎃은 가족들에게는 기꺼이 헌신하지만, 남들과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 마을의 '인싸'로서 여러 모임이나 행사를 주최하는 이웃 오드리(크리스틴 위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녀와 자주 갈등하며 다른 학부모들과도 잘 지내지 못한다. 버나뎃은 동네사람들이 형성하는 커뮤니티가 좋게 보이지 않으며 살고 있는 도시인 시애틀을 싫어하기도 한다. 버나뎃은 가족 이외의 타인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과의 관계형성과 유지에 대한 거부감이 버나뎃이 가진 불안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버나뎃이 가지고 있는 불안이 그녀가 타인과 소통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나 버나뎃은 자신이 지금 힘들다는 것만 알 뿐, 이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불안인지 알지 못한다. 평범하고 무난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불안에 빠져있는 버나뎃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처방 받은 약을 모아두며, 집 밖에서 잠들어 버리기도 한다.

 

사진ⓒ (주)디스테이션

무엇이 버나뎃을 힘들게 하는 걸까? 영화는 도서관에서 버나뎃을 알아보는 건축학도, 버나뎃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버나뎃의 과거를 보여주고, 시애틀에 온 과거 동료 폴(로렌스 피쉬번)과 버나뎃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버나뎃이 가진 불안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버나뎃은 평생을 열정적으로 해오던 '건축'을 계속하는 것을 가족을 우선시하느라 포기한 상황이었고 이것이 버나뎃이 불안 속에서 살아가게 된 원인이었다. 폴은 버나뎃은 예술가이기 때문에 예술을 계속해야만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는 영화가 이야기해줬기 때문에 버나뎃의 사정과 내면을 자세히 알 수 있지만 버나뎃의 주변인들에게 이런 영화는 없다. 가족들은 버나뎃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버나뎃의 불안을 걱정하던 엘진은 이웃집 오드리가 당한 사고가 그녀를 싫어하던 버나뎃이 의도한 결과라고 생각하며, 버나뎃이 범죄사건에 우연히 휘말리게 된 것에 흥분하여 버나뎃을 속이고 그녀가 평소 거부하던 심리상담을 받게 만들며 정신병원으로 '요양'을 보내려고 한다. 엄마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표현하는 비는 엘진보다는 버나뎃을 더 잘 이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말 그랬다면 버나뎃이 남극여행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 것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고, 제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진ⓒ (주)디스테이션

엘진이 버나뎃에게 악의를 가지고 그녀를 정신병원에 가두려고 한 것은 아니다. 비 역시 남극여행을 가고 싶은 자기 자신만의 욕망 때문에 여행을 제안한 것이 아니다. 엘진은 버나뎃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고 비는 가족이 휴식을 취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그들이 한 행동은 버나뎃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지만, 버나뎃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고 오히려 악화시켰다.

정신병원행이라는 위기에 놓인 버나뎃은 집을 탈출하여 홀로 여행을 떠나버리고, 그 여행을 통해 결국 불안을 치유한다. 버나뎃의 행선지를 예측한 비와 엘진은 그녀를 찾으러 가는 여정에서 비로소 버나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버나뎃의 불안이 사라진 것이 그들이 버나뎃을 드디어 이해해주었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버나뎃이 불안을 이겨내고 다시 삶을 살아나갈 수 있게 된 것은 스스로 도망친 여행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내면의 불안을 사라지게 할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는 사랑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 지 모른다.

 

사진ⓒ (주)디스테이션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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