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그들은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 코아르CoAR 편집부
  • 승인 2020.10.13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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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의 영화명장면]은 '코아르CoAR'의 필진들이 본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뽑은 명장면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이 글에는 줄거리, 해석, 비평보다는 '왜 그 장면이 여전히 머릿속에서 선명한지' 필자 스스로 되물으며, 감독의 카메라를 언어로 기록합니다.

<해수의 아이 Children of the Sea> 와타나베 아유무Ayumu Watanabe|2019

사진 ⓒ (주)영화사 오원
사진 ⓒ (주)영화사 오원

스크린에 별빛이 한가득하다. '밤은 어둡다'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빛이 어둠을 뒤덮는다. 루카가 소라를 따라 캄캄한 바다속을 멀리 헤엄쳐 나왔을 때 막 하늘을 본 순간이다. "이대로 쭉 별까지 헤엄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저쪽의 세계(영화)가 그림으로 그려진 명백한 환상임을 알면서도 가슴이 설렜다. 내 눈에는 야광충(자극을 주면 빛나는 식물성 플랑크톤)으로 푸른빛에 둘러싸인 루카와 소라 또한 별처럼 보였다. 만약 영화가 끝나지 않았다면 저쪽의 세계에 좀 더 가까이 맞닿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두 개의 은하가 존재했다. '두 인물이 별처럼 빛나는 바다'와 '두 인물이 바라보는 하늘'. 그러면서도 위, 아래를 구분 짓지 않는다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를 만큼 지평선은 흐릿했다. 어쩌면 감독의 의도가 아니였을까. 소라를 따라, 루카를 따라, 관객의 두 눈에 온전히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우주를 펼쳐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해수의 아이>는 10대 소녀 루카가 여름방학 동안 신비한 바다소년 우미와 소라를 만나 바다와 우주, 생명의 기원이 담긴 초현실적인 현상을 겪으면서 드넓은 세계 속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느끼게 되는 성장담이다. 정오의 잔잔한 물결, 노을로 물든 붉은 수면, 거센 파도,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해변 등 영화 속 바다는 마치 세 주인공의 표정과 감정에 따라 갖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영화는 세계라는 존재가 여러 모습을 빌려 세상 어디엔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극장을 나오며 분명 세계는 바다의 모습을 빌려 세 사람과 함께 여름을 즐기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내 여름도 세 사람과 저쪽의 세계와 함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글 오세준, yey12345@ccort.com]


 

<도망친 여자 The Woman Who Ran> 홍상수Sang-soo Hong|2019

사진 ⓒ ㈜영화제작전원사
사진 ⓒ ㈜영화제작전원사

5년간 남편과 떨어져 있던 적이 없는 감희(김민희)는, 남편의 해외출장을 계기로 외출을 해 알고 지내던 세 명의 친구들을 만난다. 첫 번째로 만난 친구는 영순(서영화)이다. 영순이 동거인 영미(이은미)와 함께 살고 있는 도시 외곽의 집에 감희는 고기를 사 들고 찾아간다. 감희, 영순, 영미는 고기를 구워 먹고 사과를 깎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일상을 듣기도 하고, 주변의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의 대화는 편안해 보인다. 그런데 편안한 순간에, 초인종이 울린다. 이웃집에 사는 남자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영순과 영미가 평소에 먹이를 주는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 칭하며 먹이를 주지 말 것을 요구한다. 아내가 고양이를 무서워하여 마당으로 나오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당에 나오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느냐 하며. 영순과 영미는 자신들이 먹이를 주는 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칭하는 것이 언짢다. '얘가 뭘 훔친 적은 없잖아요.'하며 불편함을 드러낸다. 논쟁이 이어지고 영순과 영미는 결국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웃집 남자가 돌아간 후 영순은 감희와 영미에게 추우니 이제 들어가자고 한다. 감희에게는 이후에도 편안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불편한 만남이 반복된다. 편안한 순간들과 불편한 만남들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자연스러운 모순들이 재미있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The Devil All the Time> 안토니오 캄포스Antonio Campos|2020

 

사진 ⓒ 넷플릭스
사진 ⓒ 넷플릭스

어린 러셀은 빨간 과즙을 묻힌 채로 경찰은 인도한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아버지의 시체가 쓰러져있다. 그 앞에는 십자가에 묶여 썩어가는 어머니의 시체가 보인다. 이 광경을 보고도 9살 러셀(마이클 뱅크스 레페타)은 표정 변화가 없다. 이 광경을 본 경찰은 말한다. "이게 뭐냐?" 러셀은 답한다. "기도 나무요." 그 어떤 악의도 가지지 않은 죽음이 우리 곁에 다가왔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이라도 하려 한다. 하지만 그 발버둥의 결과는 허무하거나 무의미하다. 마치 러브크레프트의 크툴루 신화가 그러하듯 죽음에는 그 어떤 의도도 없다. 오직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만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그 이전에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십자가에 전우가 걸려있는 상태를 부인에게 재현할 정도로 그는 무기력하고 두려워한다. 러셀의 표정은 그 '의도 없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도 나무에서 아무리 기도를 올려도 변화가 없는 것을 겪고도 아버지와 아들의 결과는 다르다. 이 지점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건 이 대사가 아닐까. "기도나무?"(경찰) "근데 효과가 없었어요"(러셀)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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