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하' 단지 유연할 뿐이다
'프란시스 하' 단지 유연할 뿐이다
  • 선민혁
  • 승인 2020.10.06 0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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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란시스 하'(Frances Ha, 미국, 2012, 86분)
김독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

 

 화란아, 나도 순정이 있다.

네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그때는 깡패가 되는 거야.
 -최동훈 감독, <타짜>(2006) 中-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주)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주)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프란시스'(그레타 거윅)에게도 순정이 있다. 일상을 가장 먼저 공유하고 싶은 베스트 프렌드가 있고, 머물고 싶은 도시가 있으며, 타협 없이 쫓고 싶은 꿈이 있다. 그런데 프란시스가 살고 있는 현실은 꽤 자주 이것을 짓밟곤 한다. 

프란시스는 남자친구의 동거 제안을 거절한다. 그녀는 이미 베스트 프렌드인 소피(믹키 섬너)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기간을 채우기로 한 약속도 약속이지만, 프란시스는 소피와 함께 사는 것이 즐겁다. 공유하는 공간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고, 하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서 서로의 상황에 변화가 생기더라도, 소피와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소피는 프란시스에게 자신은 이사를 가야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전부터 살고 싶었던 지역이 있는데, 다른 친구가 그곳에서 적당한 집을 찾아 함께 살자고 했다는 것이다. 프란시스는 소피의 결정이 서운하긴 하지만, 동거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소피에게는 다른 중요한 사람들이 생기고, 더 이상 프란시스만의 베스트 프렌드가 아니게 된다.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주)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주)

소피가 떠난 후 프란시스도 이사를 하게 된다. 월세도 비싸지 않고, 소피가 없는 허전함도 채울 수 있을 만한 곳을, 충동적으로 선택한다. 소피의 소개로 알게 된 친구 레브(아담 드라이버)와 벤지(마이클 제겐)가 살고 있는 집이다. 레브와 벤지는 생활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 뚜렷한 직업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돈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다. 집 안에 근사한 물건을 이것저것 사들이며 파출부를 고용하자고도 한다. 레브와 벤지는 별 걱정없이 삶을 즐기며 꿈을 쫓는 것 같다. 그런데 평범한 가정환경의 프란시스에게는 대도시의 중심지에 머무는 일이 쉽지가 않다. 절약해야 하며, 흔치 않은 일할 기회를 꼭 잡아야만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 프란시스는 결국 다시 이사를 하게 된다.

 

"It's kinda hard to explain... Because I don't really do it."

"설명하기 힘들어요... 진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 <프란스시 하> 中 -

친목을 위한 술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프란시스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복잡한 일이라서 그런 거냐고 되묻는 이에게, “진짜로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라고 답한다. 프란시스는 프로 무용수가 되고 싶지만 견습 무용수로 일하고 있는 무용단에서의 일은 생각처럼 잘 풀리지가 않는다. 설 수 있을 것 같았던 공연에는 결국 서지 못하게 되고, 무용단의 선생님은 프로 무용수 대신 사무실의 직원 자리를 제안한다. 자존심에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한 프란시스는 다니던 대학의 기숙사에서 살며, 홀 서빙 등 아르바이트를 한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쫓았지만 꿈은 여전히 멀다.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주)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주)

대도시의 중심에서 27살을 살아가고 있는 프란시스에게는 순정이 있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프란시스는 깡패가 되지 않는다. 순정을 짓밟는 세상을 그냥 인정한다. 약혼자가 생긴 소피와 예전만큼 가깝게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도 그녀를 변함없이 사랑해주고, 많이 친하지 않은 친구의 집에 신세를 지거나 좁은 기숙사로 돌아가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가며, 세상이 나의 재능에 대하여 나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세상과 기꺼이 타협한다. 프란시스는 프로 무용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의 제안을 결국 받아들여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며 안무가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다니던 대학의 기숙사에서, 다시 도시로 돌아온 프란시스는 집을 구한다. 이사한 집의 우편함에 이름표를 끼우기 위해 종이에 'FRANCES HALLADAY'라고 써서 현관으로 내려가지만, 풀 네임이 적힌 종이가 모두 들어가기에는 우편함이 너무 좁다. 프란시스는 종이를 접어 'FRANCES HA'까지만 보이게 꽂는다. 적당히 크기에 맞춰 '프란시스 하'가 된 이름표처럼 프란시스는 가혹한 현실에 꺾이지 않는다. 단지 유연할 뿐이다.

[글 선민혁, sunpool1347@gmail.com]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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