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꿈인가, 망상인가
'후쿠오카' 꿈인가, 망상인가
  • 선민혁
  • 승인 2020.09.27 2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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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주)률필름, (주)인디스토리

영화는 소설보다 시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서사보다는 이미지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스토리로 영화를 이해하는 것이 익숙한 탓에 어떤 영화에 대하여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줄거리를 중심으로 설명해주기도 하고, 영화의 서사에 '개연성이 있는가'가 좋았던 영화와 별로였던 영화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영화를 보며 재미나 감동을 느낄 때에는 이미지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일관성 있는 이미지들이 모여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우리는 그것에 취해 스크린 밖의 일상을 잊는다. 영화의 적재적소에 배치된 탁월한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며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만든다.

<후쿠오카>는 이미지에 충실하고자 한 영화로 보인다. 가까우면서도 멀고,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모호함'을 주된 매력으로 삼으려 한다. 영화에는 첫사랑을 긴 시간 잊지 못하는 두 남자와 그들을 여행으로 이끄는 여자라는 주된 스토리가 있지만 이것이 별로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는 인물들을 흘러가는 스토리를 따라 끌고가는 대신 그 주변에서 떠돌게 하며 스토리와 관련 있는듯 없는듯 한 사건들을 겪게 만든다. 또한 시간과 공간이 뒤틀린 것만 같은 장면과 환상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누군가의 꿈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진ⓒ (주)률필름, (주)인디스토리

<후쿠오카>가 일관성 있게 추구하는 '모호함'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에 대하여 관심이 없어져도, 영화관을 나가고 싶어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 구경하게 된 누군가가 꾸는 꿈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 꿈이 매력적이진 않았다.

이 영화는 모호함을 '은근하게'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대놓고 '이것은 꿈 같은 영화다'라고 말한다. 굳이 그렇게 한다. 소담(박소담)은 배운 적 없는 외국어를 알아듣는다. 이후에는 제문(윤제문)과 해효(권해효)도 소담과 함께 있으면 그런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소담은 일본에 처음 왔지만 후쿠오카의 서점 주인은 소담을 이전에 왔던 손님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설정에 관객들이 처음에는 의아함을 느낄 수 있어도, 초현실적인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하여 충분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 (주)률필름, (주)인디스토리

그러나 영화에는 굳이 "너 일본에 처음 온 거 아니었어?", "일본어 할 줄 알았어?"와 같은 대사가 나오는 등 여기 현실의 인간 같지 않은 인물이 있으며 환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어색하게 강조한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실없는 대사나 해학적인 돌발행동 또한 영화의 주된 재미요소가 될 수 있음에도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이라는 의도가 너무나도 크게 드러나 관객들을 웃기기 보다는 멋쩍게 만든다. '이제 슬프고 감동적인 장면이 나온다'라고 대놓고 예고하고 그것을 과하게 강조하는 것을 관객들이 '신파'라고 부르며 피로감을 느끼듯, 절제가 부족한 이미지는 매력적이지 않다.

클리셰적인 요소가 많다. 첫사랑을 잊지 못해 이십 몇 년간 그를 추억하며 살아가는 두 남자라는 설정은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중년 남성을 구원하는 명랑하고 특별한, 심지어 '잘 보면 섹시하기도 한' 어린 여성이라는 설정은 너무나도 진부하다. 아름다운 두 여성이 느닷없이 키스하는 장면은 말할 필요도 없다. 허무맹랑한 환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꾸는 꿈은 망상일 뿐이고, 망상을 구경하는 경험은 흥미로울 수 있어도 즐겁기는 어렵다.

[글 선민혁, sunpool1347@gmail.com]

 

사진ⓒ (주)률필름, (주)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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