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희'(김민희)는 계속해서 이동한다. 사건의 중심은 다른 곳에 있는데 감희는 그곳에 안착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돈다. 하지만 이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순간 카메라는 곧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의뭉스런 표정을 짓는다. 마치 모종의 거부반응을 보이듯 과장되며 반복되는 대사로 타인의 침입을 거부하려하지만 결국엔 그 침입을 허락하는 듯하더니 영화는 끝나버린다. 그렇다면 도망친 여자는 감희인가.
다시 생각해보자. 도망친 여자는 진정 감희인가. 어쩌면 이 이야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 모두가 도망쳤기 때문이다. 감독 홍상수가 이야기 했듯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가 어디론가 도망치고 있다.
홍상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 제목의 도망친 여자는 결국 누구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제목의 의미를) 결정할 수도 있었지만 결정하기 직전 그만뒀다"며 "사실 이 영화의 모든 여성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보자. 이들은 어디로 도망치고 있는가. 사전에서 도망을 검색해 보면 본래의 그 의미가 등장한다. 명사: 피하거나 쫓기어 달아남. 이상하다. 인물들을 위협하는 요소는 어렴풋하게 등장이라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가고자하는 약속의 땅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 목적지가 사라져 버린 움직임은 이들의 도망을 우습게 만든다. 이 조소를 지지부진한 말들과 먹을 것들, 세속적 욕망과 함께 추락해버린 일상, 혹은 경제적 부유 속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통해 보여준다. 동시에 이것들은 인물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관계의 고리이기도 하다. 대화에 의미는 없지만 그 대화 자체가 매개로 존재하고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지른 테이블 위에 사과가 올라와 있고 파스타가 있다. 반면 고양이남과 젊은 시인 사이엔 그것이 없다.
여기서 홍상수 작업의 특징인 반복과 전이를 환기해보자. 홍상수식 대화와 화법, 도저히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듯한 반복되는 그 화법은 여전히 기능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기능하는 순간을 바라보는 관객을 웃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특징적인 대화의 매개물. 바로 술이 빠졌다. 물론 막걸리(와인으로 보이는 것도.)가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잔뜩 취해 고성이 오가는 와중에, 인물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분출되어 나오는 ‘그것’이 없다. 홍상수는 바뀌었다. 분명히 바뀌었다. 이제는 다른 곳에 그것을 두고 영화 밖으로 빠져나온 것 같다.
마치 영화 후반에 나오는 바다를 담는 스크린 그리고 그 스크린 위를 찍는 카메라와 같다. 생각해보자. 영화는 사물을 찍어 상영한다. 하지만 그 사물이 실체가 아닌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마치 플라톤의 동굴 속 그림자와 같이 허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 시작된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이것이 거짓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거짓임을 알고도 그 허상을, 그 스크린 위를 영화는 담는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다. 감희는 어딘가로 도망가려 하지만 그곳은 실제하는 바다가 아닌 허구이고 도망친 곳에서 만나는 사람은 전 남자친구의 부인이 되어버린 옛 친구이다. 이 불편한 만남은 전 남자친구와 재회하며 연속되고 그녀는 영화관을 나오기보단 다시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 기꺼이 스크린 위 바다를 바라본다.
아마 다른 인물들도 그렇지 않을까. 도망친 곳에서 만난 것은 기쁨의 무엇이 아닌 예기치 못한 불쾌일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이 불편한 마주함은 영화가 끝나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도망치려 하지만 도망칠 수 없고 간절함을 가지고 도망쳐봤자 그곳은 약속의 땅이 아닌 새로운 악연이 점철된 땅일 뿐이다. 이번 영화는 그의 반복과 변주가 유독 잔인하게 보인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도망친 여자
The Woman Who Ran
감독
홍상수Hong Sang soo
출연
김민희
서영화
송선미
김새벽
권해효
제작|배급 영화제작전원사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77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0.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