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준의 극장 가(街)] 어른은 없다
[오세준의 극장 가(街)] 어른은 없다
  • 오세준
  • 승인 2020.09.16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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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문희>, <뉴 뮤턴트>, <아무도 없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 단평

<오! 문희 Oh! My Gran> 정세교|2020

사진 ⓒ CGV 아트하우스
사진 ⓒ CGV 아트하우스

'두원'의 딸 보미가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 유일한 목격자는 치매에 걸린 엄마 '문희'와 강아지 앵두뿐. 두원은 늦은 밤 보미를 데리고 나간 엄마 문희가 원망스럽다. 하지만 그도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놀기 바빴으니 누굴 탓할 입장이 아니다. 정작 보미를 사고 낸 범인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 경찰 수사 또한 진전이 없는 상황. 두원은 문희로부터 사고에 대한 뜻밖의 단서를 듣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직접 뺑소니범을 잡기 위해 나서기 시작한다. 

딸의 사고 범인을 찾는 과정을 담은 <오! 문희>는 수사극보다는 로드무비에 가깝다. 차를 타고 농촌 이곳저곳을 다니는 두 사람의 길에는 범인의 흔적과 가족의 과거가 함께 자리한다. 두원의 별명이 왜 '육봉'인지, 보미의 엄마는 어디로 갔는지, 틈만 나면 문희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죽고자 하는 것인지. 영화는 문희의 흐릿한 기억을 발판 삼아 모자의 관계를 그려낸다. 부모에게 자식은 어떤 존재인지. 반대로 아프고 늙어가는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어떤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엄마 문희와 한 성격하는 아들 두원의 케미는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며, 나문희와 이희준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뉴 뮤턴트 The New Mutants> 조쉬 분 Josh Boone|2020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십대 돌연변이 레인, 일리야나, 샘, 로베르토는 '치료'라는 명목으로 닥터 레예스가 지휘하는 비밀 시설에 수용되어 감시를 받는 중이다. 어느 날 대재앙이 덮친 마을에서 혼자 살아남은 새로운 돌연변이 '대니'가 들어온다. 이후 모든 아이들은 잊으려 했던 끔찍한 기억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맞이한다. 동시에 그들이 가진 돌연변이 능력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20세기 스튜디오가 제작한 마지막 엑스맨 영화 <뉴 뮤턴트>는 이처럼 십대 시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두려움, 트라우마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각성하는 돌연변이들의 이야기다.

사회의 경계에 놓인 십대들의 고뇌, 고통을 사실감 있게 묘사한 원작 코믹북과는 다르게, 영화는 허접한 크리처와 공감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사연만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심지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균형있게 다루지 않고, 특정 인물들의 사연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들의 능력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액션, 공포, 호러, 범죄 등 정작 방황하고 있는 것은 영화의 정체성이다. 사랑과 우정을 그려낸 몇몇 장면만이 기억에 남는 것으로 보아, 이 영화의 감독이 <안녕 헤이즐>을 연출했음에 고개를 끄덕일 뿐. (감독이 왜 <뉴 뮤턴트>를 스트리밍으로 공개해도 된다고 발언했는지 고개를 또 끄덕일 뿐)


 

<아무도 없다 ALONE> 존 하이암스 John Hyams|2020

사진 ⓒ 판씨네마(주)
사진 ⓒ 판씨네마(주)

제시카는 남편과 살던 집을 떠나 부모가 사는 집으로 가는 길이다. 2차선 도로 위, 그녀 앞으로 달리는 차의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 고의적이라 느낄 정도로. 그녀는 그 차를 추월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 차는 되려 보복 운전과 악질 스토킹을 자행한다. 그렇게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표적이 된 그녀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숲으로 납치된다. 휴대폰도 없고,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상황.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살인마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다>에 등장하는 살인마는 마치 <살인마 잭의 집>(2018)과 <골든 글러브>(2019) 속 연쇄살인마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두 작품과 다르게 영화는 살인마보다는 피해자인 '제시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남편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이 살인마를 마주한 공포와 맞물리면서, 초반 무기력했던 그녀의 모습이 생존을 갈망하는 절실한 모습으로 뒤바뀐다. 이어 살인마로부터 도망치는 그녀의 몸짓은 어느새 우울함을 깨부수기 위한 자기 극복적인 움직임으로 변모한다. 이야기 자체는 신선하지 않지만, 비교적 느린 전개 속에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유지하고자 하는 감독의 노력이 엿보인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 Please Don't Save Me> 정연경|2019

사진 ⓒ 주)리틀빅픽처스
사진 ⓒ 리틀빅픽처스

'선유'는 엄마와 단둘이 산다. 모녀를 두고 아빠는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했기 때문. 이유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 그리고 그 '빚'은 고스란히 선유와 엄마의 몫이다. 늦은 밤 선유의 집을 채우는 형형색색의 간판들의 불빛과 도시의 소음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다. 이 역시 빚 때문이다. 선유의 엄마가 가장 친한 친구의 돈을 갚지 못하는 이유도, 하루종일 일을 해야 하는 이유도, 단둘이 외식조차 할 수 없는 이유도, 친할머니가 선유의 학교에 찾아와 아들의 보험금을 달라고 소란을 피우는 이유도 모두 '빚' 때문이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열두 살 소녀 '선유'를 통해 '가족의 해체'를 말한다. 선유가 경험해야 하는 세계는 부모라는 어른조차 포기하는 가혹한 세계다. 그러나 영화는 비극적인 상황을 끝없이 나열하기보다는, 선유를 좋아하는 정국을 등장시킴으로써 아이들의 순수함을 함께 그려낸다. 어른의 세계 안으로 추락하는 선유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는 정국의 모습은 이 시대에 필요한 '환대'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다. 정연경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영화웹진 코아르CoAR 오세준 영화전문 기자, yey12345@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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