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운명 혹은 현실 (2)
<테넷> 운명 혹은 현실 (2)
  • 배명현
  • 승인 2020.09.07 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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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넷'(TENET, 영국‧미국, 2020, 150분)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사진 ⓒ IMDb
사진 ⓒ IMDb

<테넷>에서 정작 중요하게 보아야 할 지점은 공들여 찍어둔 것. 그러니까, 역행하는 시간 속에서 순행하는 또 다른 시간의 시각화에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부분이 논란을 만드는 지점이다.

분명 <테넷>은 진입 장벽이 높은 영화가 맞다.(이 작품의 복잡함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자세한 언급하지 않겠다) '비선형적 편집의 끝판왕'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복잡한 플롯 때문에 관객은 영화를 따라가기에 숨이 찬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이 어려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이 영화는 놀란 자신도 "나는 이 영화를 한 번 보고 이해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끔찍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자신도 얼마나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지 명백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놀란은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까. 여기엔 의도가 있을 것이다. 놀란은 영화관에 있는 그 모든 사람을 포기한 것이다. 일반 관객은 물론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도, 영화를 전공한 사람도,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사람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포기한 것이다. 이에 대한 놀란의 답.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 나는 이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그 어떤 이해도 하려 하지 않고 그냥 즐겼다. 스펙터클로서의 영화. 눈앞에 흐르는 움직임들을 관조하는 목격자로서 의자에 편히 앉아있었다. 135분쯤 말이다. 영화는 다시 한번 관객에게 말을 건다.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헬기에 타지마!" 나는 당혹스러웠다. 이 형용 모순은 뭐지. 차라리 영화 초반에 후자를 이야기하고 후반에 전자를 이야기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 다행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후반에 영화 전체를 복기하기를 명한다.

 

사진 ⓒ IMDb
사진 ⓒ IMDb

그러나 나는 이런 개념에 대한 이해보다 관객이라면 영화라는 세계 안에 즐기기를 바란다. 지적 유희나 퍼즐의 완성으로만 이 영화에 한계를 부여하는 건 오히려 테넷을 축소시키는 행위라 생각한다. 테넷은 분명 과학에 기반한 영화이지만, 하드SF 영화는 아니다. 논리적 모순(사물의 인버전과 인물의 인버전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거나, 주인공의 상처가 미리 생겨났다가 복구되는 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호구의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즐길만한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지 완벽하게 구성된 또 다른 세계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이다.

그렇다면 복잡한 플롯 구성을 통해, 영화적 카타르시스와 함께 지적 쾌감을 주는 방식이 성공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확언하기 힘들다. 하지만 내가 확언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가 또 다른 세계 하나를 체험했다는 것이다. 시간 역행에 관한 영화는 많았지만, 인버전이란 개념을 통해 역행하는 시간과 순행하는 시간의 충돌은 분명 새로운 창조이다. 이 창조는 분명 새로운 것이다. 이 부분이 '테드 창'(Ted Chiang)의 소설을 뛰어넘는 부분이다. 과격하게 말하자며, 소설이 다룰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가 보았던 그 움직임들을 아무리 정교한 문장으로 써낸다 해도 표현 불가능할 그 이미지들 말이다. 역행하는 움직임과 순행하는 이미지의 충돌을 완벽하게 담아낸 마지막 10분 전투 시간 중 5분의 순간은 또 어떠한가.

사실 새로운 개념이 제시된다면 그 개념이 성숙기를 거치기 전까진 서툴게 다루어지는 게 사실이다. 내가 <테넷>을 지지하는 점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인버전이란 개념의 시작 위치가 있다면 후에 나올 작품들은 분명 더 나은 지점을 향해 갈 것이란 믿음이 있다. 사실 이 지점은 관객보단 미래의 창작을 할 이들에게 더 의미 있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때문에 이 작품 하나에 국한해 해석해 말한다면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기능하게 될 '내일의 영화들'에 기대어 말한 다면 조금은 다르게 보아도 좋지 않을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영화들이 이 영화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게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 나는 인버전된 미래인이 아니다. 그 때문에 확언할 수는 없지만 <테넷>은 지금까지 쓰인 시간에 관한 그 어떤 서사들의 새로운 지점을 열었다는 데에 나의 역량을 걸어보고 싶다.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웹진 코아르CoAR 배명현 영화전문 에디터, rhfemdnjf@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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