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운명 혹은 현실
'테넷' 운명 혹은 현실
  • 배명현
  • 승인 2020.09.01 2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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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넷' (Tenet, 미국·영국, 2020, 150분)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1.

최근 딱히 이렇다 할 영화가 없던 영향 탓일까. 코로나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테넷>에 열광하고 있다. <테넷>은 코로나를 뚫고 영화관을 가야 할 이유를 만들었고, 많은 이들이 IMAX관으로 향했다. 만약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극장을 찾았겠지만, 2020년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시국에 크리스토퍼 놀란의 결단은 실로 경탄할만하다. 전 세계적으로 위축된 영화계에 마중물을 넣기 위해 그는 영화 개봉이란 초강수를 결단했다. 이건 자신의 영화적 힘을 긍정적인 방향을 이용한 한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기대작들이 계속해서 밀리는 와중에 그의 신작 영화가 개봉된다는 건, 말 그대로 가뭄에 단비와 같다. 그래서일까, 현재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테넷>으로 수렴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번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 놀라운 세계는 스펙터클 그 자체이다. 그가 영화 개봉 이전부터 '이 영화를 한 번 보고 이해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영화의 구성과 시간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러닝타임 시작과 동시에 긴장감을 끌어내는 동시에, 감독이 가진 역량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거대한 스크린 속으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나는 이 씬에서 확신했다. 그는 현존하는 감독 중 IMAX화면을 가장 잘 쓰는 감독이 분명하다고. 그리고 이번 영화는 이전까지 만들었던 영화의 합작일 것이라고.

그의 이전 영화를 살펴보자. 놀란은 <메멘토>, <인터스텔라>에서 영화가 시간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면, <덩케르크>에선 시점에 관해 그리고 구성에 관해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였다. 철저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그는 관람자를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 계산된 설계는 너무나 철저해서 그 바깥을 상상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여기서 오해하진 말자. 그 이상의 세계(영화의 바깥, 혹은 영화가 끝난 그 이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후를 상상하기 위해선 놀란이 쌓아놓은 논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후, 상상해야 하는데, 놀란의 설계는 이론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과할 정도로 복잡 난해하기에 '다음'을 상상하는 것에 대한 난이도가 높다는 말이다. 이번 <테넷>은 그 난해함의 정점에 도달한 작품이 아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이전 영화들의 합으로 보인다.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많은 리뷰가 <테넷>에 관해 이야기 할 때 해석의 어려움에 집중하는 것도 어쩌면 이 지점과 닿는 맥락이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비판할 때, 어렵게 이야기를 꼬아놓기만 하고 정작 남은 건 없는 영화라고 평한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지점이다. 지금까지 '좋은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이 철학적 사유와 현실에서 더 나은 세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기여를 했는가, 혹은 도덕 윤리적 차원의 이야기를 얼마나 훌륭하게 남기었는가 등. '영화가 끝난 이후 시작되는 영화'라고 일컬어지는 기준이다.

그 때문에 나 또한 이 영화가 등장인물을 도구적 혹은 소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혐의에 대해 동의한다. 더욱이 인물들의 행동 동기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다는 혐의가 짙다는 사실 또한 피할 수 없는 지적이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왜 그가 이런 설계를 했는지 어렴풋하게 짐작 할 수 있었다.

<테넷>은 거시적 형태로, 그러니까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그 시간 밖까지 생각해야 보이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설명한 대로 이야기하자면,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미래가 원인이고 그 행동의 결과가 현재에 일어난다는 것을 숙지해야, 이 작품의 진정한 성취를 볼 수 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전에는 전혀 없던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아니지만 소설가 '테드 창'이 이미 시도를 하고 또 훌륭한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테드 창은 시간과 운명론적 관점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철학적 통찰을 던져준다.

또한, 물음만을 던지는 무책임함을 넘어 분명한 자신의 관점을 제시한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 그 대표적인 작품일 것이다. 미래가 정해졌다고 할 때, 그러니까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으리라 여겨진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때 도덕적, 철학적 사유 지점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앞서 말한 훌륭한 작품의 기준에 이 두 소설이 서설(敍說)에 비해 부합할 것이다. 그러나 테드 창은 소설가이고, 크리스토퍼 놀란은 감독이다. 놀란의 성취는 영화적 시각화에 있다.

 

2.

<테넷>에서 정작 중요하게 보아야 할 지점은 공들여 찍어둔 것. 그러니까, 역행하는 시간 속에서 순행하는 또 다른 시간의 시각화에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부분이 논란을 만드는 지점이다.

분명 <테넷>은 진입 장벽이 높은 영화가 맞다.(이 작품의 복잡함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자세한 언급하지 않겠다) '비선형적 편집의 끝판왕'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복잡한 플롯 때문에 관객은 영화를 따라가기에 숨이 찬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이 어려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이 영화는 놀란 자신도 "나는 이 영화를 한 번 보고 이해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끔찍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자신도 얼마나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지 명백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렇다면 왜 놀란은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까. 여기엔 의도가 있을 것이다. 놀란은 영화관에 있는 그 모든 사람을 포기한 것이다. 일반 관객은 물론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도, 영화를 전공한 사람도,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사람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포기한 것이다. 이에 대한 놀란의 답.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 나는 이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그 어떤 이해도 하려 하지 않고 그냥 즐겼다. 스펙터클로서의 영화. 눈앞에 흐르는 움직임들을 관조하는 목격자로서 의자에 편히 앉아있었다. 135분쯤 말이다. 영화는 다시 한번 관객에게 말을 건다.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헬기에 타지마!" 나는 당혹스러웠다. 이 형용 모순은 뭐지. 차라리 영화 초반에 후자를 이야기하고 후반에 전자를 이야기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 다행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후반에 영화 전체를 복기하기를 명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개념에 대한 이해보다 관객이라면 영화라는 세계 안에 즐기기를 바란다. 지적 유희나 퍼즐의 완성으로만 이 영화에 한계를 부여하는 건 오히려 테넷을 축소시키는 행위라 생각한다. 테넷은 분명 과학에 기반한 영화이지만, 하드SF 영화는 아니다. 논리적 모순(사물의 인버전과 인물의 인버전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거나, 주인공의 상처가 미리 생겨났다가 복구되는 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호구의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즐길만한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지 완벽하게 구성된 또 다른 세계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이다.

그렇다면 복잡한 플롯 구성을 통해, 영화적 카타르시스와 함께 지적 쾌감을 주는 방식이 성공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확언하기 힘들다. 하지만 내가 확언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가 또 다른 세계 하나를 체험했다는 것이다. 시간 역행에 관한 영화는 많았지만, 인버전이란 개념을 통해 역행하는 시간과 순행하는 시간의 충돌은 분명 새로운 창조이다. 이 창조는 분명 새로운 것이다. 이 부분이 '테드 창'(Ted Chiang)의 소설을 뛰어넘는 부분이다. 과격하게 말하자며, 소설이 다룰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가 보았던 그 움직임들을 아무리 정교한 문장으로 써낸다 해도 표현 불가능할 그 이미지들 말이다. 역행하는 움직임과 순행하는 이미지의 충돌을 완벽하게 담아낸 마지막 10분 전투 시간 중 5분의 순간은 또 어떠한가.

사실 새로운 개념이 제시된다면 그 개념이 성숙기를 거치기 전까진 서툴게 다루어지는 게 사실이다. 내가 <테넷>을 지지하는 점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인버전이란 개념의 시작 위치가 있다면 후에 나올 작품들은 분명 더 나은 지점을 향해 갈 것이란 믿음이 있다. 사실 이 지점은 관객보단 미래의 창작을 할 이들에게 더 의미 있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때문에 이 작품 하나에 국한해 해석해 말한다면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기능하게 될 '내일의 영화들'에 기대어 말한 다면 조금은 다르게 보아도 좋지 않을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영화들이 이 영화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게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 나는 인버전된 미래인이 아니다. 그 때문에 확언할 수는 없지만 <테넷>은 지금까지 쓰인 시간에 관한 그 어떤 서사들의 새로운 지점을 열었다는 데에 나의 역량을 걸어보고 싶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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