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일어난 일이 일어나도
'테넷' 일어난 일이 일어나도
  • 선민혁
  • 승인 2020.09.0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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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넷' (Tenet, 미국·영국, 2020, 150분)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

'장 폴 샤르트르'의 이 유명한 문장은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선택을 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우리는, 끈임없이 선택하며 삶을 이어 나간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도 달라지기에 우리는 선택을 통해 운명을 만들어 나간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선택과 미래 사이에 인과 관계가 없다면 어떨까? 미래의 어떤 혁신적인 기술로 인하여, 시간 역행이 가능해진 <테넷>의 세계처럼 말이다. 시간의 흐름이 양방향인 <테넷>의 세계는 상식적인 인과율로 이해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원인이 반드시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 때문에 과거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사물은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그저 존재할 뿐이다.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테넷'이라는 단어 또한 그렇다.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테넷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지만, 그 의미는 모른다. 이후 그것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더 이후에는 테넷이라는 이름의 조직을 자신이 설립하게 된다.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테넷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라 이 조직이 테넷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테넷이라는 조직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테넷이라는 단어는 기원없이 그저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테넷>의 세계에서 과거로 돌아가 할아버지를 죽인다고 해도 현재의 손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손자는 과거나 미래의 원인과 관계없이 현재에 존재한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물들의 행동이 과거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듯하지만 사건 사이에 인과율이 없는 <테넷>에서 인물들이 무언가를 바꾼다고 할 수 없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인 세계에서 그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도 '테넷'에 속한 인물들은 분투한다.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연기한 주인공은 자세한 사정을 모르고도, 세계를 멸망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안 지 얼마되지 않은 여인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을 지키고자 애쓴다. 양방향으로 시간이 흐르는 세계에 대하여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주인공의 동료 닐(로버트 패틴슨)은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래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세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세계를 위협으로부터 구하고,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는 일어난 일이 일어나는 세계에서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들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세계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일어난 일이 일어나기 위한 행동을 한다. '테넷'을 설립하여 세계를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미래를 이미 가지고 있는 주인공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이다. 인버전된 총알이 총구로 돌아오게 하려면 총을 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겨냥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소설 속의 '나'와 같은 주인공은 중요한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죽음을 감수하고,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을 구하고자 하며, 무슨 일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을 지키고자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에서도, 시간이 양방향으로 흐르는 눈으로 보고 나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영화 속의 세계에서도, 인간이 원하는 것은 같으며 우리는 그것을 위해 행동할 것이다.

[글 선민혁, sunpool1347@gmail.com]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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