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th JIMF] '다시 만난 날들' 음악 속에서 흔적을 찾다
[16th JIMF] '다시 만난 날들' 음악 속에서 흔적을 찾다
  • 오세준
  • 승인 2020.08.17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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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시 만난 날들>(Da Capo, Korea, 2019, 98분)
감독 ‘심찬양’(Shim Chan-yang)

 

사진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사진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영화 <다시 만난 날들>은 제16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 초청 작품으로, 심찬양 감독이 연출했다.

한 기타리스트의 현란한 연주가 공연장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그 순간 카메라는 뒤에서 그를 바라보며 기타 연주를 하는 '태일'(홍이삭)의 모습을 잡는다. 태일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도 저 사람처럼 현란한 연주로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유명해지고 싶은 것일까. 공연이 끝나고, 한 대형 소속사 사장이 태일을 찾으며 '대중적이면서도 뻔한 곡'을 부탁한다. 모두가 잠든 시간 집에 돌아온 태일은 당장 곡 작업을 시작하지만,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적지 못한 공책과 멍하니 공책의 빈 페이지만을 바라볼 뿐이다. 음악 소리는커녕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그는 다음날 떠났던 고향을 다시 찾아간다.

<다시 만난 날들>은 태일이 다녔던 학원을 찾아가 함께 밴드를 하며 음악을 했던 후배 '지원'(장하은)과 그녀가 가르치는 '중학생 밴드'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플롯으로 이뤄진 영화는 '태일과 지원'의 관계와 중학생 록밴드 아이들이 청소년 음악경연대회를 준비하며 예선과 본선 무대에 오르는 과정이 교차하며 전개해 나아간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인물들을 그려내는 영화의 방식이다.

태일은 왜 곡을 쓰지 못할까. 태일은 왜 고향을 찾아갔을까. 이런 의문들은 '지원'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소가 된다. 그는 그녀가 일하는 학원에서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오다가 갑작스럽게 중학생 밴드의 경연곡을 듣는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기타를 잡고선 마치 답례를 하듯 그들에게 자신 나름대로 경연곡을 수정해 들려준다. 어두운 밤 보랏빛 조명 아래 태일은 혼자서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그는 여전히 지원의 학원 앞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합주실. 태일이 쓰다만 곡에 자연스럽게 지원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곡을 완성한다. 막차가 끊긴 태일은 학원에서 잠을 청하고, 지원도 집에 도착하지만, 두 사람은 아쉬운 듯 다시 피아노를 치고 기타를 연주한다.

 

사진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사진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평범한 휴일 오후에 너와 다시 만나게 되면 아무렇지 않은 듯 반갑게 인사를 건낼까

- 태일의 노래 가사 중에서 -

<다시 만난 날들>은 연주를 통해서 두 인물이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의 몸짓에는 두 사람만의 익숙함이 베여있다. 자연스럽게 코드를 찾으며, 연주를 이어간다. 이때 감독은 인물의 손이나 얼굴 등을 클로즈업하는 것이 아닌 '롱테이크'로 연주하는 모습을 담는다. 그 순간 과거와 현재의 경계는 무너진다.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가 아닌 그저 '함께'라는 수식만이 그 장면을 표현한다. 더욱이 헤어진 후에 두 사람이 각각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숏들이 교차하는 순간 들리는 음악은 따로 번갈아 들리는 것이 아닌, '함께 연주하고 있는 완성된 곡'이다. 여기서 숏과 숏을 연결시키는 것은 편집이 아닌 '음악'이다.

영화는 '태일'이 쪽지만 남겨둔 채 고향을 떠나 유학을 떠났다는 사실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이유는 태일이 지원과 함께, 또 중학생 밴드와 함께 음악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된다. 외롭고 힘들었던 서울의 밤과 지원과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고향의 밤, 중학생 밴드와 함께 연주하는 시간과 과거 고향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던 시간 이렇듯 태일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고향에서 자신이 즐겁게 친구들과 음악을 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아니. 그는 잃어버렸던 그때의 기억을 음악 속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서 다시 찾아간다.

중학생 밴드의 보컬 덕구가 본선 무대를 앞두고 갑자기 도망친다. 바닷가 등대 근처에서 태일은 그를 찾는다. 그리고 묻는다. "덕후야 넌 밴드를 할 때 언제가 좋았어?"라고. 덕구는 "애들이랑 합주할 때 먼가 딱 맞아서 소리가 하나가 됐을 때. 막 제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노래를 아이들에게 단어를 표현하면 애들이 그것을 노래로 만들어요"라며, 신나게 답한다. 대단한 친구들을 두었다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친구들이 마음이 아프겠다고 말을 거네는 태일의 얼굴에는 해가 지고 파도에 쓸려 남은 빛들로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어 "난 그게 제일 후회되더라"라는 말한다.

 

“평범한 휴일 오후에 너와 다시 만나게 되면 아무렇지 않은 듯 반갑게 인사를 건낼까”
사진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중학생 밴드의 무대가 무사히 마치고, 영화는 과거 태일과 지원의 밴드가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서 신나게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학생 밴드는 곧 태일과 지원의 과거이다. 서툴렀지만 함께 했던 순간들. 빈 노트에 자유롭게 코드와 음표를 적고, 느낌대로 가사를 읊조릴 수 있었던 순간들. <다시 만난 날들>은 음악을 통해서 순수했던 시절을 불러온다. 영화는 트렌드가 변했고, 여전히 메이저 회사로 들어가는 것은 힘들며, 나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현실을 망각하고자 한다. 그 빈 자리에 '사랑'을 놓는다. 타자와의 마주침, 타자에로의 끌림 그리고 관계의 지속. 홀로 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태일은 고향에서 친구와 학생들의 만남을 통해서 다시 노래를 부른다.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영화의 제목은 '태일이 잃어버렸던 시간'을 뜻한다. 그는 '음악'을 통해서 '과거의 흔적'을 떠올린다.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폴이 마들렌과 홍차를 마시고 잊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프랑스인들에게 마들렌이 아름다운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라면, <다시 만난 날들>에서 '음악'은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문 친구들을 향한 '진심'에 닿도록 하는 마법이다. 

태일과 지원을 연기한 두 아티스트 '뮤지션 홍이삭과 기타리스트 장하은'을 통해서 <다시 만난 날들>은 음악영화로서의 전문성은 물론, 음악에 이해와 애정을 깊이 있게 표현해낸다. 마치 익숙한 노래의 제목처럼 '영화 속의 보랏빛 밤은 끝이 없고', 오로지 음악만이 채워지며 따뜻한 울림을 전달한다.

 

사진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사진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코아르CoAR 오세준 영화전문 기자, yey12345@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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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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