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
  • 선민혁
  • 승인 2020.08.10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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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사진 ⓒ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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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한국 상업영화를 비판할 때 가장 자주 쓰는 단어는 '신파'일 것이다. 한국영화의 관객들은 극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감정과잉에 극도로 피로감을 느낀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관객들에게 이와 같은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아니다. '하드보일드'라는 수식이 어울리는 이 영화는 절제된 감정선을 유지함으로써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과잉'이 발생하지 않게 하였다.

또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흥미롭지 않은 화면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주얼적으로 풍부하다. 공간, 의상, 연기파 배우들, 카메라 움직임 등의 요소들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스타일은 한국영화에서 꽤나 새로운 것이라고 할 만하며 이러한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미쟝센은 관객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관객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단지 '멋진 영상'이 아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2시간 내외로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하는 관객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감정과잉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에는 관객이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사진 ⓒ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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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서사가 충분히 짜이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영화는 캐릭터에 대하여 쉽게 설명하고 넘어간다. 때문에 인물들이 하는 행동에는 동기가 부족하다. 관객들은 동기가 부족한 행동에 공감할 수 없다. '인남'(황정민)이 존재도 모르던 딸을 왜 그렇게 구하려고 하는 지 알 수 없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내놓는 답은 그냥 '부성애'일 뿐이며 '레이'(이정재)가 인연을 끊고 살았던 형의 복수에 왜 그렇게 몰두하는지 궁금한 관객들에게 영화는 '편집증적 성격'이라는 쉽고 단순한 대답을 할 뿐이다. '유이'(박정민)가 왜 위험한 일을 선뜻 도와주는 지에 대해서는 '돈도 돈이지만 나도 자식이 있어서'로 그냥 넘어가고자 한다.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그 정도 이유만으로도 쫓고 쫓기는 추격적에 광적으로 몰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영화 밖의 관객들은 캐릭터들의 추격전에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영화의 주된 콘텐츠인 추격전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닿을 리 없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상징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것이 궁금하지 않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죽음의 위기를 맞은 인남에게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하는 레이의 대사, 폭력이 넘치는 혼란이 마무리된 후 아이를 데리고 새로운 땅에 가는 존재가 '유이'라는 결말 등 캐릭터의 서사가 충분했다면 영화적으로 재미있었을 만한 대사나 인상적이었을 수 있는 상황들은 그저 흔한 장면들 중 하나가 되었다.

 

사진 ⓒ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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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부족한 인물들은 입체적이지 못하게 되고 관객들은 그들에게 이입할 수가 없다.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중요한 설명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의 행동이나 대사도 유치하게 느껴진다. 인남의 딸을 향한 부성애는 애절해 보이기 보다는 어쭙잖아 보이며 왜 그렇게 인남을 죽이고 싶어 하냐는 물음에 "이유는 중요한게 아냐, 이제 기억도 안나네"라고 하는 레이의 대답은 관객들이 실소를 하게 만든다. 유이의 입에서 나오는 "인간들 더러운 꼴 어디 가야 안 보고 사나"라는 대사에 관객들은 공감하지 못하고 진부함을 느낄 뿐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관람하기 전에 접했던 영화에 대한 정보는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자신과 관련된 사건을 추격하는 인물과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를 추격하는 또 다른 인물이라는 시놉시스는 흥미로웠고 제작진과 출연진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만큼이나, 이야기의 내용이 아쉬웠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글 선민혁, sunpool1347@gmail.com]

 

사진 ⓒ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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