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세계 - <반도> 좀비 영화는 맞는데 좀비 영화는 아니다
연상호 감독의 세계 - <반도> 좀비 영화는 맞는데 좀비 영화는 아니다
  • 배명현
  • 승인 2020.07.2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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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도'(Peninsula, 한국, 2020, 116분)
감독 '연상호'(Yeon Sangho)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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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이후 4년 후. 반도는 좀비에게 점령당했다. 영화 <반도>의 시놉시스이다. 영화는 <부산행>에서 나온 인물은 재등장하진 않지만 세계관이 이어진다. 영화 반도의 시작은 흥미롭다. 강동원의 탈출과 가족 서사로 인한 아픔, 그리고 홍콩에서의 핍박. 하지만 그 이후 문제는 발생한다.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인 반도로 돌아오면서부터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스스로 들어오는 무리한 선택은 왜 하는 것인가. 영화의 설득력 부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핍박 받는 삶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좀비 소굴로 들어갈 만큼 힘이드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영화가 제대로 그 아픔을 보여주지 못한 것인가. 찝찝한 초반의 설득력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한국에 발을 딛고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설정들을 보여준다. 밤에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둘은 관객의 심장을 조이기에 적절한 요소이다. 또한 이전작인 <부산행>에서 그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반도>의 관객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설정이다. 그러나 ‘준이’와 ‘유진’이 등장하면서부터 설정을 무너뜨린다. 자동차가 달리면서부터 설정도 함께 마구잡이로 달리기 시작한다. 카 체이싱이 발발하지만 납득할 만한 수의 좀비는 나오지 않고, 달려들지도 않는다. 볼링핀처럼 처박고 달릴 뿐이다. 영화는 이 때부터 좀비물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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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좀비물이라고 해서 좀비가 주로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좀비 설정을 가지고 보여주려는 새로운 시도 혹은 장르적 도전 등을 훌륭하게 보여준다면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도>는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이전까지 연상호 감독이 보여주었던 메시지조차 읽을 수 없었다. 좀비 대신 '인간vs인간'을 선택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은 황중사라는 단편적인 악역과 서대위라는 설득력 부족한 리더의 모습이었다.

둘 다 부족한 인물이다. 하지만 황중사는 영화 속에서 기능은 한다. 악역의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영화 전체를 뒤집을 만한 힘이 있는 악역인가를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서대위는 어떠한가. 영화내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가.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가. 631 부대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인물이지만 능력이 부재하다. 일단 그가 아포칼립스에서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지 부터가 의문이다. 질서나 규범이 사라진 반도에서도 군부대의 위계질서는 유지되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영화 결말부에서 차를 강탈하기 위해 존재했던 인물일 뿐인가.

이러한 설정의 문제는 계속해서 보여진다.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임에도 좀비가 설득력있게 인간을 먹어치우지 않는다. 좀비 영화의 기본적 전제는 좀비의 식인이다. 그리고 인간의 좀비화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좀비는 인간을 사냥하는 듯 연출된다. 인간이 좀비화되는 모습은 보여지지 않는다. 감독이 좀비화를 고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때문에 좀비들 대신 인간vs인간의 구도를 선택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점은 더 큰 문제가 된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 안티테제의 인간들이 너무나 부실하기 때문이다. 영화 자체가 설득력을 잃어간다.

그렇다면 테제에 속하는 인간들을 살펴보자. 가장 눈에 띈 인물은 유진이다. 그녀의 능력으로 보이는 RC카 조종 능력은 흥미롭다. 아이라는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흥미에서 그친다. 왜냐하면 이건 영화이기 때문이다. <반도>는 어드벤처 소년물 만화가 아니다. 각자 캐릭터에 맞는 능력과 행동은 영화에 섞이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정석의 텍티컬 총격 능력과  준이의 운전 능력 또한 그렇다. 마치 rpg게임에서 연출되는 직업의 특성처럼 보여 진다. <반도>는 영화이지 게임이 아니다.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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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시나리오의 문제이다. 영화는 메타포를 통한 전달의 장르이기에 현실에서 일어나듯 명확한 고증이나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배제한다 치더라도 시나리오의 구멍이 너무나 많다. 이 허술함이 관객을 영화 안에 집중시키지 못하게 한다.

관객의 몰입 불가가 아마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이 지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연출 또한 이야기해야 한다. ‘슬로우 모션’과 ‘시간 끌기’가 이렇게나 많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과했다. 액션 장면에는 무조건 슬로우 모션이 들어간다. 인물이 위기에 처한 순간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주인공에게 기회를 준다. 탈출의 기회, 생존의 기회, 재회의 기회.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인 듯, 기적적 순간들이 주인공에게 일어난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기 때문인걸까.

결말 또한 놀랍다. 김노인의 맥거핀이라고 생각했던 재인이 나타난다. UN군이 나타나 주인공 일행은 구출한다. 막상 재인에게 구출 요청을 한 김노인은 죽었지만 말이다. 일종의 반전이라고 하면 반전이다. <부산행>에서 보여준 일말의 긍정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묻고싶다. 이 엔딩이 어쨌다는 것인가? 인물들이 살아남았단 것으로 안도를 얻고 극장 밖을 나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현실에는 좀비가 없으니 다행이다 하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것일까. 그냥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영화가 존재한 것만 같은 영화이다.

나는 반도가 신파 때문에 무너진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에서 신파는 이미 미운정이 들만큼 든 하나의 장르이다. 신파를 좋아하는 관객도 분명 많다. 하지만 그 신파로 가는 과정이 문제이다. 길을 잘못 들었다. 어쩌면 당분간 한국에서 좀비영화는 투자를 받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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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배명현 에디터, rhfemdnjf@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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