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짓' 익숙한 세계의 아이러니들
'트랜짓' 익숙한 세계의 아이러니들
  • 선민혁
  • 승인 2020.07.07 0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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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하여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트랜짓>을 보기 전에 줄거리 등 영화의 기본정보를 접하다 보면 난민문제를 다룬 영화라고 예상할 수 있는 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한 가지의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받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트랜짓>은 난민문제를 비롯하여 인간의 생존과 양심, 관계와 감정 등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의 세계에는 나치가 존재한다. 나치가 파리를 점령한 상황에서 그들을 피해 떠난 난민들은 마르세이유에 모인다. 망명을 떠나야 하는 난민들은 각 국의 영사관에서 자신이 입국을 허가 받을 만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비자 발급을 기다린다. 마냥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그들은 고독을 견디고자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치가 존재하는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가 아니다. 거리에는 최신식 자동차가 돌아다니며 컬러TV도 보인다. 나치 경찰들은 현대식으로 무장했다. 문명이 발달하고 개인의 인권이 신장된 현대에도 파시즘은 존재하며 난민은 여전히 발생하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은 과감한 설정을 통해 직설적으로 전달했다.

 

사진ⓒ엠엔엠 인터내셔널

'펫졸드 감독'이 이 영화에 담은 이야기는 더 많이 있다. 파리에서 머물고 있던 영화의 주인공 '게오르그'(프란츠 로고스키)는 나치로부터 도망 중인 소설가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부탁 받게 된다. 편지는 두 통인데 마르세이유에 있는 멕시코 영사관에서 보낸 것과 마르세이유에 있는 소설가의 아내가 보낸 것이다. 게오르그는 소설가가 머물고 있다는 파리의 호텔에 도착하지만, 소설가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다. 편지를 수신인에게 전달하지 못한 게오르그는 소설가가 남긴 유작을 가지고 호텔을 떠난다.

이후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을 하는 나치를 피해 급히 은신처로 돌아온 게오르그는 함께 머물던 동료로부터 부상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또 다른 동료를 마르세이유에 있는 그의 가족에게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게오르그는 기차의 화물칸에 숨어 마르세이유로 위험한 여정을 떠난다. 자살한 소설가의 유작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게오르그는 부상당한 동료가 어느새 목숨이 끊어져버렸다는 걸 알게 된다.

마르세이유에 도착한 게오르그는 동료의 죽음과 위로를 전달하기 위해 죽은 동료의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죽은 동료의 아들 '드리스'(릴리언 뱃맨)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유대감을 쌓는다.

 

사진ⓒ엠엔엠 인터내셔널

이렇게 보면 게오르그는 자신과 같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선량한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편지를 전달해주는 일과 동료를 마르세이유로 데려가는 일을 할 때 돈을 받고 그것을 행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선량한 마음에서 행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동료의 죽음을 전달한 일을 마친 게오르그는 편지를 전달하려 했던 소설가가 죽었음을 알리고자 마르세이유에 있는 멕시코 영사관에 찾아간다. 영사관의 관리에게 소설가의 이름을 말하자 마자 관리는 게오르그를 곧장 영사에게 안내한다. 그런데 영사는 소설가의 얼굴을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게오르그를 그가 편지를 보낸 소설가라고 생각하고 멕시코로 떠날 수 있는 비자가 발급되었으니 어서 떠날 준비를 하라고 이야기한다. 이 순간 게오르그는 자신이 소설가인 척을 계속 하여 보다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멕시코로 떠나기로 한다. 죽은 소설가의 신원을 훔치기로 한 것이다.

소설가에게 편지를 보냈던 그의 아내 '마리'(폴라 비어)는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남편을 찾아 마리세이유를 떠돈다. 마리는 남편을 떠났었지만 다시 함께하자는 편지를 보냈고 멕시코 영사로부터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남편이 나타났다는 곳을 아무리 뒤져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마리를 지속적으로 마주치던 게오르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마리와 함께 멕시코로 떠나고자 영사관에서 소설가인 척을 계속하며 남편 신분으로 마리의 비자를 받아낸다. 마리에게는 이 사실을 물론 알리지 않는다. 또한 비자를 가지고 있지만 비자가 없는 마리를 두고 떠날 수 없었던 마리의 애인 리차드(고데하르트 기에세)를 설득시켜 그가 마르세이유를 먼저 떠나게 만들려고 하기도 한다.

 

사진ⓒ엠엔엠 인터내셔널

이렇게 게오르그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행하지 않을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다. 파시스트의 억압으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보다 안전한 땅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오르그가 마리에게 느끼는 사랑 또한 관객이 지지하기 어려운 감정이기는 하나, 딱히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 만한 이유 역시 없다. <트랜짓>에서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게오르그의 캐릭터는 한 가지 설명으로 특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혼란스러우면서도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이 인물은 지극히 혼란스러운 영화의 외부세계와 어울리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영화에서 게오르그가 만들어내는 끝없는 이야기들은 특정한 주제를 예상하고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에게는 당혹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불완전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이 인물이 혼란스러우면서도 익숙한 세계에서 만들어내는 서사들은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충분히 유기적이며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는 탁월한 아이러니들이 존재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사진ⓒ엠엔엠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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