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 우리는 생존을 욕망하지 않는다
<#살아있다> 우리는 생존을 욕망하지 않는다
  • 선민혁
  • 승인 2020.06.30 0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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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아있다'(#ALIVE, 한국, 2020, 98분)
감독 '조일형'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원인을 알 수 없는 집단 감염 현상으로 인해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을 잃어버린 주인공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 <#살아있다>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우리에게 매우 시의적절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혼자 남은 줄 알았던 세상에서 서로를 발견한 영화의 두 주인공 준우(유아인)와 유빈(박신혜)이 연대와 협력을 통해 역경들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삶을 살아나가고 있는 관객들에게 희망과 의지를 주려 하기도 한다. 영화의 메시지처럼 어떤 거대한 고난도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연대한다면 결국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러한 시의적절성 외에도 <#살아있다>에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많다. 특색 있는 배우 유아인의 맛깔나는 연기, '좀비'라는 한국영화에 흔하지 않은 장르, SNS, 유행하는 게임, 개인방송, 드론 등 최신의 소재들. 그런데도 우리가 <#살아있다>에 부족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클리셰적인 전개와 '신파'에 피로감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사건에 대한 원인을 끝까지 이야기해주지 않는 영화를 불친절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존의 재난영화, 좀비영화에 비하여 새로운 점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영화의 매력을 떨어뜨렸을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의 행위에 우리가 이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우리의 욕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욕망을 반영한 영화를 보며 서사에 몰입하고 인물에 이입한다. 그런데 <#살아있다>는 우리의 욕망을 제대로 반영해주지 않았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살아있다>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인물인 준우와 유빈은 '살아남기'라는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다. 이들은 살아남는 것을 열렬히 원하나 그에 비해 이들의 '살아남기'에는 동기가 부족하다. 이들이 살고 싶어하는 이유는 단지 '좀비가 되기 싫어서', 또는 '아버지가 문자로 꼭 살아남으라고 해서' 일 뿐이다. 살아남지 않고 죽어도 좀비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주인공들도 그렇게 여기고 있고, 그래서 한때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좀비가 되더라도 생명이 끊어지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첫 번째 이유에 관객들이 완전한 공감을 하기는 어렵다. 또한 누군가 나에게 살아라, 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물론,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좀비가 되기 싫을 것이고 아버지가 남긴 문자도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가 단지 그것 뿐만은 아닐 거라는 이야기이다. 준우는 준우대로, 유빈은 유빈대로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나가야 하는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각자의 이유는 관객들이 그들에게 이입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살아있다>는 관객들에게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인물의 서사가 제대로 짜이지 않은 것이다.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2103) 中

<노예 12년>(2013)에서 솔로몬 노섭이 외친 것처럼 인간이 욕망하는 것은 살아남는 '생존'이 아니라 살아나가는 '삶'이다. 때문에 인간에게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왜, 어떻게 사느냐이다. 물론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존이 전제 조건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생존 자체를 욕망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다>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서사가 없기 때문에 삶을 욕망하는 것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단지 생존 그 자체를 욕망한다. 그들의 생존에는 별다른 이유나 동기가 필요하지 않다. 죽기 싫고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생존이 아닌 삶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생존을 열렬히 응원할 수 없고 그들의 성공에 함께 기뻐하기가 어렵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코아르CoAR 선민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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