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세계 - <사이비> 반(反)신으로 부터 지켜낸 영역
연상호 감독의 세계 - <사이비> 반(反)신으로 부터 지켜낸 영역
  • 배명현
  • 승인 2020.06.28 2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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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이비'(The fake, 한국, 2013, 100분)
감독 '연상호 '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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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2011) 이후 연상호는 두 번째 장편인 <사이비>(2013)를 내놓았다. '역시 연상호답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연결고리로는 그로테스크한 그림체, 가감 없이 들이미는 폭력, 성적 불쾌감, 강압적이며 거친 대사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 작품과 이 작품의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는 부조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계속해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본, 혹은 경험한 부조리를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돼지의 왕>을 생각해보자. 학교 폭력을 비판하는 영화나 서사는 많다. 하지만 망가져 버린 인간의 과거를 쫒고, 피해자라고 생각한 인물이 '새로운' 가해자가 되어있는 영화가 있었는가. 거기에 피해자는 평생 가해성의 경험 때문에 고통받으며 살고 있다. 심지어 그 결말 또한 자신의 가해성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서사의 구성에서 필수라고 요구되는 입체적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이비>는 어떠한가.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들이 징글징글하게 얽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투한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진실을 막으려하고 누군가는 분노 단 하나로 진실을 밝히려 한다. 왜인지는 너무나 명확하게 영화에서 밝힌다. 그의 영화에서 인물들을 추동하는 힘은 너무나 명징하고 단순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이 특유의 연상호식 '보여주기' 방식은 그래서 한국 영화계에 필요하다.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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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라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작명 또한 그 연장선일 것이다(부산행, 서울역, 염력, 창, 그리고 최근 개봉할 '반도'까지 그의 제목 취향은 분명 단순 명료하다)그렇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아이러니를 봐야 한다. <사이비>의 세계 속에서는 민철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다. 그 외 다른 인물은 목사의 진실에 대해 알 수 없거나,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민철의 이야기를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명백한 악이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그리스 신화의 '카산드라'이다. 아폴론의 총애를 받던 그녀는 예언 능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 후 아폴론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게 된다. 사이비는 카산드라의 서사를 경유하며 한국식 이야기로 비틀어져 나왔다. 진실을 알고 말할 수 있는 인간, 그러나 그 누구도 그의 진실을 믿지 않는 서사이다.

그렇기에 이 지점에서 안다는 것은 차라리 고통이다. 몰랐다면 말할 수 없겠지만, 진실을 알아버렸기에 입을 다물 수 없다. 그리스 신화가 그러했듯이 연상호는 민철에게 운명을 부여했다. 민철은 이제 자신에게 부여받은 운명을 이행해야만 한다. 민철은 마을 전체와 싸움을 시작한다. 이젠 목사, 마을 사람, 조폭, 경찰, 딸까지 모두가 그의 적이다.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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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쟁의 결과는 어떠 한가. 그는 결국 사이비 종교 집단의 실체를 밝혔지만 얻은 것이라고는 딸의 죽음이다. 다시는 회계할 수 없는 죄를 온 몸에 적셨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화의 결말은 오묘하다. 수몰예정 지역이었던 마을은 물에 잠기지 않았다. 버려진 마을로 보이는 곳에서 인적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그 곳에서 민철과 그의 부인만이 살고 있는 듯하다. 머리가 샌 민철은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산으로 들어간다. 그 산 곳 조그만 구덩이에 초로 불을 지핀 교단이 보인다. 다음 쇼트는 방언이 터진 듯한 얼굴을 비춘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사이비 종교. 종교가 마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명징하게 알고 있는 민철은 왜 자신만의 교구를 만든 것일까.

영화는 그 이유를 설명하진 않는다. 자신이 자신의 딸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그 죄책감을 인간으로써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확신은 할 수 없다. 우리가 보지 못한 시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씬이 엔딩인 것에 대해선 분명 이야기를 해보아야 한다. 이 씬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민철의 방언이다. 종교에 대한 믿음도 신앙도 없던 그가 어떻게 방언을 알게 되었을까. 이건 진정 믿음으로 말미해 터진 일종의 기적이란 말인가. 정말 믿음의 영향이라고 했을 때. 그의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을까.

'사이비라는 반(反)신의 영역'을 물리친 민철, 그가 지킨 마을의 가치는 그가 이전까지 행한 행동을 용서할 만큼의 가치를 지킨 것일까. 물론 영화는 대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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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배명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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