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그냥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이다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그냥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이다
  • 선민혁
  • 승인 2020.06.23 0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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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Onward, 미국, 2020)
감독 '댄 스캔론'(Dan Scanlon)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대의와 명분이 사라진 세계에는 연명(延命)만이 남아있었다." 박민규 소설 <龍龍龍龍> (2010년 창비에서 출간된 『더블 side B』 에 수록, 龍자가 넷 합쳐진 한자인 '수다스러울 절'이 본래의 제목이나 해당 한자가 대부분의 OS에서 표시되지 않음에 따라 본 글에서는 '龍龍龍龍'으로 대체하여 표기)

박민규의 소설 <龍龍龍龍>에는 용(龍)에 비유되는 무림의 고수 네 명이 등장한다. 경지에 올라 불사의 몸을 얻고 약 300년을 살아온 이들은 더 이상 무공이 필요하지 않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으로 전락한다. <龍龍龍龍>에서 네 명의 인물은 이러한 현대사회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끝내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적응에도 실패하게 된다. 이 세계의 대의와 명분에 대하여 고민하던 이들이 결국 마주하게 된 것은 ‘그냥 계속 이렇게 살 것이다.’ 라는 절망적인 예언일 뿐이었다.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에도 시대의 변화에 의해 본성을 잃어버린 이들이 등장한다. <龍龍龍龍>에서 이러한 인물들은 단 네 명으로 세계의 극히 일부분을 차지했다면,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에서는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본성을 잃은 채로 살아가고 있다. 엘프, 켄타우로스, 만티코어 등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법적인 존재들인데, 과학과 산업이 발달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논리가 자본이 된 현대에서 이들은 마법적인 힘을 전혀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엘프는 마법을 사용하는 대신 회계사 등이 되어 생계를 유지하고, 켄타우로스는 말의 하체를 이용해 빨리 달리는 대신 자동차를 운전한다. 날 필요가 없어 날개를 쓰지 못하게 된 모험과 전투가 본능인 만티코어는 투자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위험한 모험을 하는 대신 ‘위험한 모험’이 컨셉인 패밀리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특이한 점은 이들은 자신들이 본성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들 중 대부분이 그것을 크게 문제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마법’이라는 본성보다 문명이 더 편리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박민규의 소설 <龍龍龍龍>에서의 용들처럼 자신의 본성이 더 이상 대단하지 않고 별로 필요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까지 하는 인물은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이안 라이트풋 역시 문명의 일부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이안은 열 여섯 살이 되던 날, 아버지가 남긴 선물을 통하여 형 발리와 함께 마법을 접하게 된다. ‘이 세계에서 마법은 사라졌지만, 너희에게 그것이 조금은 남아있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메세지와 함께. 마법이라는 가치가 통하지 않는 세계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자식들이 마법을 다시 되살리는 일을 해내기를 바란 것이다. 이안과 그의 형 발리에게 죽은 아버지가 남긴 마법은 죽은 그를 24시간 동안 다시 살려내는 마법이었다. 그런데 이안과 발리가 아버지를 살리는 마법을 실행하던 중 해당 마법의 재료인 피닉스젬이 깨져버리고 만다.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버지를 살려내던 중에 피닉스젬이 깨졌기 때문에 아버지는 하반신만 부활한 상태가 되고,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아버지를 완전한 상태로 되살리고자 이안과 발리는 피닉스젬을 찾아 나선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마법을 포함한 고대의 전설에 대하여 평소 열광하던 발리의 조력으로 인해 마법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던 이안은 그것의 가치를 점차 인정하게 된다.

결국 이안은 마법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고 괴물과 싸워 승리하며, 아버지도 잠깐이지만 부활시켜낸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고대의 가치를 따라 퀘스트들을 수행하며 피닉스젬을 찾고 마법을 이용해 아버지를 부활시키는 이안과 발리의 여정이, 세계에 마법을 부활시킨다는 것이다.

이안과 발리의 여정으로 인해, 요정들은 다시 날 수 있게 되고, 만티코어는 전투의 본능을 다시 가지게 되며, 켄타우로스는 자동차를 타는 대신 타고난 신체를 이용해 지치지 않고 달리게 된다. 본성을 잃고 살아가던 마법적인 존재들이 본성을 되찾은 것이다.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러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은 이들이 문명의 일부로 전락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마법적인 존재들은 되찾은 본성을 그동안 자신들의 본성을 억누르던 체제를 더 잘 유지하는 데에 쓸 뿐이다. 만티코어는 다시 찾은 전투 본능을 운영하던 패밀리 레스토랑의 컨셉을 강화하는 데에 쓸 뿐이고, 켄타우로스는 달리는 능력을 이용해 더 능숙한 경찰관이 될 뿐이다. 이안이 기껏 찾아낸 마법의 힘으로 하는 일은 형 발리에게 성능 좋은 자동차를 선물하는 일이다. 마법의 가치를 찾는 과정에서 부숴버렸던 체제 유지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학교는 마법으로 다시 수리했다.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에서 마법적인 존재들이 다시 찾은 본성은 그동안 그들을 억눌렀던 시스템을 더 잘 버티게 해주는 진통제로서만 기능할 뿐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제 아무리 마법이라도 현대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냥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이다.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코아르CoAR 선민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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