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 친절함에 속다
<침입자> 친절함에 속다
  • 오세준
  • 승인 2020.06.1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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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침입자’(intruder, 한국, 2020, 102분)
감독 ‘손원평’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우선, 손원평 감독의 <침입자>는 별점을 박하게 줄 만큼, 또 혹평을 낳을 만큼 형편없는 영화는 아니다. 물론, 수작도 아니다. 개인적으론 '제법 읽을 텍스트가 다양한 작품이다' 정도. 그렇다고 이 글이 작품을 변호하거나 지지하는 방향과 목적을 가지진 않는다. 오히려 추켜세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배우의 연기에 대한 부분이다. 예능 프로인 <런닝맨>과 여러 드라마를 통한 TV 속 화면이 아닌, 거대한 스크린에 담긴 '송지효의 얼굴'과 작품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그녀의 내공있는 연기력'에 대한 놀라움과 신선함. 여기에 <악인전>(2019), <정직한 후보>(2019) 그리고 이번 작품으로 연이어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로써의 김무열'까지. 결국, '배우들이 다 했다'고 본다.

 

집을 흔들다

<침입자>의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하다. 건축가 '서진'은 안타깝게도 뺑소니로 아내 '수정'을 잃는다. 그는 아내의 죽음에 따른 트라우마로 하나뿐인 딸 '예나'와 함께 부모님이 사시는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어릴 적 잃어버린 동생 '유진'(송지효)이 찾아온다. 그런데 그녀가 돌아온 후 집에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서진은 이 모든 변화가 '그녀'와 연관이 있음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서진'의 눈을 빌려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 안에는 그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최면술'로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즉, 영화는 '서진을 통한 제한된 이미지'와 '과거의 기억'을 오가는 복잡한 구성을 가진다.

초반 <침입자>의 전개는 '상실'에 '상실'을 더하는 듯 군다. 서진의 꿈을 예로 들면, 아내의 교통사고 현장에서 '뺑소니범'을 확인하려는 찰나 여동생 유진을 잃어버렸던 놀이동산으로 돌변한다. 꿈의 구조 역시 사망의 순간과 실종의 순간의 이어짐이다. 현실 역시 딸(유진)을 잃은 부모의 집에 아내를 잃은 서진의 가족이 더해진다. 이런 흐름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은 다름 아닌 '유진의 등장'이다. 그녀는 상실로 인한 텅 비어버린 집의 공간을 채워나간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서진의 시야에서 꺼림칙한 '유진'이 가진 목적(그녀의 욕망)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그녀가 정말 과거 잃어버린 여동생인지'에 대한 불확신으로, 서진 역시 어느새 집 안에 집요한 의심을 불어넣는 것이다.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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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스터리와 스릴러라는 풍선'(이것은 또 '집이라는 공간'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에 유진과 서진이 내뱉는 공기가 채워지는 격인데, 이상하게도 터질 듯 팽팽해야 하는 풍선은 공기가 모자랐는지 흐물흐물하다. 왜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가 지속적으로 건드리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집=가족(혈연)'이라는 명제의 부정이다. 예를 들면, 건축가이면서 집을 짓는 서진은 자신에 집은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또 서진의 아빠는 딸을 잃은 아픔을 가졌지만, 자신의 아들이 아내를 잃은 아픔을 공감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텅 비어있는 유진의 방', '사고 이후 비워놓은 서진의 집' 등의 뻔한 상징을 가진 공간들까지. 결국, 이러한 것들은 유진의 등장으로 화목할 리 만무한 '가족의 모습'의 증거로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설정은 단순히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에 불과할 뿐, 되려 이것들이 '누구'를 감싸는지 대한 조명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영화의 구성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도, 기어코 사건을 발생시키도록 부추기는 것도 '서진'이 유일하다. 재밌게도 부모님이 사는 집은 잃어버린 여동생 유진이 오기를 바라며 서진이 직접 지은 것인데, 유진이 돌아왔음에도(유전자 결과가 가족으로 밝혀졌음에도) 집의 화목한 분위기를 망치는 장본인 역시 '그'뿐이다. 물론 이 아이러니는 '미스터리한 유진의 정체'와 '유전자 검사가 조작됐을지 모르는 의심'을 배제했을 때 작용한다. 영화 속 서진에게 주어진 의무가 '뺑소니범'을 찾고, '유진의 정체를 밝혀야 함'에 있다면, 이러한 시련을 겪어야 함에 대한 근거와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이 물음'은 영화에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이 시련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물음으로 곧바로 이어지기에 던질 수 있는 의문이다. 가족 형성의 실패, 혹은 가족의 불행의 원인은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슬픔을 주고, '죄의식'을 남긴다. 극 중 서진의 엄마가 오랫동안 신에 대한 믿음도 딸을 잃은 죄의식에서 비롯된다. 서진이 아내를 죽인 뺑소니범을 기필코 잡아야 하는 것도, 언제가 돌아올 동생을 위한 방을 집 안에 넣어둔 것도, 그가 가진 두 개의 트라우마도 모두 '죄의식'이 발생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물들은 응집되어 '유진'에게 다시 향한다. 폭약으로 채워진 수류탄을 던지듯.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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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침입자

영화 중반에는 이질적인 시퀀스가 떡하니 자리한다. 이는 서진의 시선도, 서진을 관찰하는 감독의 카메라도 아니다. '유진'과 정체 모를 행인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그 남성의 부름에 놀라고, 곧이어 그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 순간들을 목격하는 서진의 집에서 근무하는 가정부. 마침 가정부는 서진으로부터 '유진'의 행동을 유심히 볼 것을 부탁받았다. 이 장면 하나로 '유진'이 서진의 동생이 아닐 가능성을 낳으며, 극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빨라진다. 즉 그 순간부터 유진은 영화 제목 그대로 '침입자'가 된다. 결말에 밝혀지듯, 유진은 자신을 부른 남성과 가정부를 모두 죽인다. 뭐 영화가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이야기다.

이 친절한 침입자는 독이 오를 때로 오른 '서진'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니 영화는 그녀를 사이비 종교에 현혹된 여자로 만든다. 그녀의 목적은 가족의 불행도, 돈도 아닌, 종교가 시킨 일을 행하는 것뿐이다. 바로 신에게 선택받은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며, 우연하게도 선택받은 아이는 서진의 딸 '예나'(박민하)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관객까지 현혹하기 어렵다. 여기에 죽었던 서진의 아내 '수정'을 불러온다. 바쁜 일로 가정에 소홀했던 수정은 우울증에 걸렸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진이 속한 종교에 들어가 마음을 달랜다.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그녀는 서진에게 종교에 대한 일을 고백하기로 마음먹지만, 유진의 계획에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침입자'의 설계를 그린다. 사이비종교의 교리에 따르는 어느 침입자의 이야기인 것. 시작은 피해자로부터 시작되지만, 후에는 침입자로부터 일어졌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매우 친절하게. 따지고 보면 뺑소니범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서진'이 옳았다. 범인 역시 유진과 함께 움직이는 종교의 일원이었기에. 후반의 문제는 이야기의 조각을 조립하는 과정에 있다. 서진이 유진을 쫓는 추격보다, 유진이 서진과 마주할 때마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자행을 고백하는 순간들이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내가 범인이야!"라고.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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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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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툭! 튀어나온 유진의 시퀀스처럼. 영화는 자동차 추격, 심지어는 모든 것이 최면술로 조작됐다고 서진을 덮어씌우는 순간까지. 예나를 납치해야 하는 유진의 욕망은 길을 잃고 '서진'의 주변을 맴돈다. 이러한 전개는 분명 작위적인 편집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는 영화가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라 '드라마'로 정의해야 마땅한 불완전한 장르임을 자처한 모습이다.

특히, 이 친절한 침입자의 드라마는 온통 상투적인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이층집, 비밀의 방, 사이비 종교, 가족의 비극, 최면, 트라우마, 살인과 실종 등 모든 요소들의 이미지는 '미장센'이라 부를 영화만의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관객을 괴롭힐 정도로 비슷한 영화들의 이미지들을 불러온다.

아이의 실종과 이층집은 <클로젯>(2020)을, 이층집 속 공포스러운 가족의 분위기는 <변신>(2019)을, 사이비 종교가 자행한 범죄는 드라마 <구해줘>(2017)와 <사바하>(2019)를, 납치된 아이를 찾아 나서는 모습에는 <나를 찾아줘>(2019), 독박육아의 지친 아내와 남편의 괴리감에는 <82년생 김지영>(2019)을, 더불어 최면을 통한 기억 조작이나 범인을 잡는 설정은 언급할 영화가 너무도 많다. 감독의 창작 방식과 의도와 무관하게 <침입자>는 최근에 개봉한 한국영화들을 모두 경유한 흔적을 가진다. 이는 작가의 창작성을 의심하기 보단 위에서 나열된 영화들의 이미지를 넘어서지 못하는 '독창적인 이미지'의 결핍과 작위적인 편집이 낳은 결과인 셈이다.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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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하나를 가져가니, 다른 하나를 주셨네"라거나 "아무 편도 들어줄 수 없는 현실이 진짜 지옥이야"같은 무게감 있는 대사들이 이미지를 대신해 영화를 지탱하는 탓에 결정적인 순간에도, '숏-리버스 숏'이 이뤄지는 시퀀스에도 '독백'처럼 화면에는 대사만이 둥둥 떠다닌다. 한편으로 또 아내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서진의 과거에는 그녀가 독박육아로 우울증에 시달려 사이비 종교를 선택했다는 사정이 더해질 필요성, 또 <트루먼쇼>처럼 알고 보니 '나' 빼고 모두가 한패(사이비 종교)라는 상황 역시 의문이 든다.

 

어쩌면 <침입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서진의 딜레마'였을지도 모른다. '가족을 잃은 자가 가족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까?'와 같은 실험을 하는. 영화의 마지막 절벽에서 서진의 손을 잡고 버티는 유진의 상황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던 과거를 재현하도록 서진에게 말하는 순간은 "핏줄로 이어진 가족의 손을 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당연히 '손을 놓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진과 유진의 대립은 결과적으로 '혈연≠가족'이라는 명제의 근거를 도출하는 식이다. 영화적 설정과 인물들의 사정들이 명제의 파이를 크게 키워내지만, 관객을 만족시킬 만큼의 크기인지는 물음표다.

읽을 텍스트가 많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과연 흥미와 매력을 잃을 정도로 그것들이 중요했는지, 마땅히 고집을 피울 중요성을 지니는지, 이는 필자의 생각을 넘어 관객들의 반응이 답할 부분이다. <침입자>는 배우로의, 혹은 텍스트로의 영화일지 몰라도,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해서 쉽게 답할 수 없는 '휘발하는 이미지'의 영화임에 그저 고개를 끄적일 뿐.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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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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