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h JIFF] '이사벨라' 과거 안에 머문 불확실성
[21th JIFF] '이사벨라' 과거 안에 머문 불확실성
  • 오세준
  • 승인 2020.06.02 1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이사벨라'(Isabella, 아르헨티나, 2020, 79분)
감독 '마티아스 피녜이로'(Matías PIÑEIRO)
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이사벨라>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 극영화 초청작으로, '마티아스 미녜이로'(Matías PIÑEIRO) 감독이 연출했다.

<이사벨라>는 올해 2월에 개최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2020)에서 '엔카운터스: 감독상 특별언급'을 수상한 작품으로,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로 상영됐다. 특히, 셰익스피어 고전 속 인물을 매개로 동시대 아르헨티나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해 온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의 희곡 연작, 그 다섯 번째 작품이다. 영화는 연극 <자에는 자로 MEASURE BY MEASURE>의 이사벨라 역 오디션을 준비 중인 '마리에'와 그녀의 친구이자 오빠의 애인인 '루시아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사벨라>는 감독의 영민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의 뛰어남에는 '편집'으로 구현된 시공간의 비선형적 구조가 존재한다. 이는 테드 창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 Arrival>(2016)가 보여준 구조와 동일하다. 그러나 '전자'는 단순히 여러 시간대의 사건을 감독의 의도로 뒤섞인 채 영화가 진행되는 구조인 반면에 '후자'는 루이스 뱅크스 박사(에이미 아담스)가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들과의 소통 속에서 '시간의 동시성'의 존재를 발견하는 이야기로, 내러티브와 몽타주 모두 시간의 동시성을 보여주는 차이를 가진다.

 

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영화는 '마리에'가 오디션을 보는 과정, 돈을 빌리기 위해서 오빠를 찾아가는 과정,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여기에 '루시아나'가 '마리에'와 같은 오디션을 보러 가는 과정 등이 시간적 순서에 따르지 않고 뒤섞여 있다. 영화의 숏과 숏 사이에는 미묘한 교집합이 존재하는데, 이를테면 공연 준비를 하면서 친구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서 오빠를 찾아갔던 순간을 말하는 장면 이후에(or 이전에), 영화는 마리에가 오빠를 찾아 수영장을 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사벨라>는 두 여성의 '과거 - 현재 -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 안에서 관객인 우리가 연결 지을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은 '주인공들의 오디션 합격 여부'이다. 파편처럼 흩뿌려진 주인공들의 이미지를 조립하는 과정은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기에 관객에 입장에서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로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측면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이나 <밤과 낮>이 떠오른다)

 

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결국 이 영화는 '마리에와 루시아나 중에서 누가 이사벨라 역을 맡느냐'에 목적을 두고, 그 배역을 위해서 달려가는 두 사람의 과정을 작위적으로 배치해 진행한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왜?”라는 이유가 남는다. 비교적 단순한 사건을 복잡한 편집으로 구성할 필요성에 대한 의문.

'감독의 편집'에 대한 당위성은 중반을 넘어서 '루시아나'가 이사벨라 역을 맡았다는 사실 이후에 더 확실해진다. 사실 루시아나는 이미 영화 촬영도 진행 중인 실력 있는 배우다. 과거 이사벨라 역을 맡아서 공연도 할 뻔했다. 그런데 영화는 그녀가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마리에'의 오디션 과정만을, 5분여 가까이되는 독백까지 길게 담아낸다. 즉 이 몽타주는 단순히 관객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작용이 아닌 '대비'로의 구분이 이뤄지도록 한다.

'마리에의 노력'(보여지는 것)과 '루시아나의 재능'(보여지지 않는 것), 실패와 성공 등을 오로지 인물들의 행위로 나타내 지도록 형성하는 것이다.

 

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좌절과 성공 사이에서 퍼즐처럼 조각난 '마리에'의 이미지들. 그녀는 연기를 하고 싶은 욕망을 성실히 따른다. 설령 화려함으로 휘감겨진 루시아나가 자신의 앞에 있더라도, 마리에가 보여주는 현실의 충실성은 빛을 잃지 않는다. 그녀의 걱정(자신에 대한 의심과 미래의 불확실성)은 오로지 '과거'라는 시간 안에서만 머물기 때문.

단순한 사건을 해체하여 재조립한 감독의 몽타주는 '행위의 결과'를 망각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행위 자체가 가지는 힘을 태동하도록 조작한다. 그것이 영화의 끝에서 오디션 작품 속 '대사 한 줄'로 서로가 어떤 마음인지 이해할 수 있는 '마리에와 루시아나'의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오로지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실천을 이룬 인물들의 움직임은 "의심은 반역적이라 위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얻을 것을 잃게 만들죠"라는 극 중 대사처럼 뚜렷하고 분명하게 다가온다.

 

사진 ⓒ IMDb
사진 ⓒ IMDb

[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j]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