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즌 이스케이프' 자유가 주는 스릴
'프리즌 이스케이프' 자유가 주는 스릴
  • 선민혁
  • 승인 2020.05.19 0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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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리즌 이스케이프'(Escape from Pretoria, 영국 외, 2020, 106분)
감독 '프랜시스 아난'(Francis Annan)

<프리즌 이스케이프>는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던 시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권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주인공들이 탈옥을 시도하는 이야기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인생을 건 인물들이 백인이라는 점과,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흥미로운 부분들은 영화에서 단지 인물들을 정의로운 죄수로 만들고, 관객들이 이들의 탈옥 시도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정도의 역할로만 기능한다. '프리즌 이스케이프'라는 단순한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된 이 영화는(원제목은 Escape From Pretoria이다.) 제목처럼 감옥을 탈출하는 스릴에 집중한다.

 

사진ⓒ이놀미디어

매우 흥미로운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 영화가 이야기해주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아쉽지만, <프리즌 이스케이프>가 선택한 '탈출 스릴러'라는 집중을 비판하기는 어렵다. 그것이 충분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을 미리 밝힘으로 인해 관객들이 결말을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주는 넘치는 긴장감은 관객이 몰입을 할 수 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관객들은 이 영화가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주인공들이 탈출에 성공하는 결말을 자연스럽게 예상하게 된다. 이것은 스릴러 영화에는 큰 핸디캡이 아닐 수 없는데, <프리즌 이스케이프>는 이러한 핸디캡을 안고도, 관객들에게 충분한 긴장감을 주는 일을 여유롭게 해낸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주인공들이 탈출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이 탈출을 준비하고 시도하는 장면을 편하게 지켜보지 못한다. 심지어는 탈옥에 실패한 것이 실화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것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영화가 주인공이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들을 충분히 실패할 수 있을 만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주인공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실패해버리는 시도를 하게 만들고, 그 시도가 언제 교도관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지게 한다. 그리고 적절한 사운드와 카메라 연출을 통해 이 상황에 관객이 깊게 몰입하게 만든다.

 

사진ⓒ이놀미디어

이 영화를 '탈출 스릴러' 이상의 다른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주인공들이 단순하면서도 놀라운 발상으로 탈출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영화의 대부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오직 탈출의 스릴을 표현하려고만 한 걸까.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대립은 <프리즌 이스케이프>를 단순한 탈출영화로만 보는 것을 방해한다. 그것은 탈출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함께할 것을 제안하는 팀 젠킨(다니엘 래드클리프) 무리와 탈출을 말리는 데니스 골드버그(이안 하트) 무리의 대립이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항하는 인권운동계의 대부인 골드버그는 젠킨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탈옥을 시도하는 것을 우회적으로 만류했다. 젠킨은 탈출 준비에 진전이 있을 때마다, 골드버그와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함께 탈출할 것을 제안하지만 골드버그와 추종자들은 거절한다. 탈출을 하지 않는 것은 파시스트에게 굴복하는 것이며, 저항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젠킨에게 골드버그는 감옥에서 견디는 것이 저항이라고 말한다.

 

사진ⓒ이놀미디어

나를 둘러 싼 세계가 납득할 수 없는 논리에 의하여 작동하고 있을 때, 그런 세계가 변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정말 저항이 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쉽게 대답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영화에서 골드버그는 저항을 하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태까지 탈출에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그는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체념과 합리화를 했을 뿐이다. 골드버그의 체념과 합리화는 젠킨의 투쟁보다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기에, 그를 마냥 비판할 수는 없지만, 투쟁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유를 쟁취하는 스릴은 오지 않는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사진ⓒ이놀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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