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 데이 인 뉴욕' 낭만이 가능하게 하는 것
'레이니 데이 인 뉴욕' 낭만이 가능하게 하는 것
  • 선민혁
  • 승인 2020.05.13 0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 미국, 2019, 92분)
감독 '우디 앨런'(Woody Allen)

격정적이지 않아도 지루할 틈 없는 전개, 유머러스한 대화들, 아름다운 화면들과 매력적인 배우들, 환상적으로 그려진 도시, 보통 사람들보다 강한 자의식의 주인공. 우디 앨런이 자기 복제를 또 다시 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전형적인 그의 영화다. 그러나 우디 앨런이 만들었고 제목에 도시 이름이 들어가는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들어간 관객이 기대하는 것 또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 관객에게 주는 우디앨런적 즐거움은 그들의 기대를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제목에서부터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는 어김없이 낭만들이 넘쳐난다. 연인을 기약없이 기다리는 주인공에게 내리는 비는 쓸쓸하기 보다는 따뜻하고, 대도시의 밤을 밝히는 불빛은 네온사인이 아닌 고전적인 분위기의 가로등이다. 영화가 비추는 도시에는 밤낮으로 재즈가 울려 퍼진다. 여느 우디 앨런 영화에서 그런 것처럼, 경험하지 않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진 주인공 개츠비(티모시 샬라메)는 이 도시의 낭만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낭만이 대체 무엇이길래, 우디 앨런은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도 그것을 예찬하는 것일까.

 

사진ⓒ(주)버킷 스튜디오

이 영화는 개츠비의 장면들과 애슐리(엘르 패닝)의 장면들,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뉴욕에서 떨어져 있는 대학의 캠퍼스 커플인 이들이 주말 동안 뉴욕에 오게 된 이유는 학보사 기자인 애슐리가 유명 영화 감독 롤란 폴라드(리브 슈라이버)의 인터뷰를 맡게 되면서이다. 시골 부잣집 출신으로 영화에 빠져 있는 애슐리가 롤란 폴라드를 인터뷰하고 각본가, 배우 등 영화인들을 만나는 동안, 그녀의 연인인 피아노와 재즈를 사랑하는 도시 출신의 개츠비는 그녀를 기다리며 뉴욕을 배회한다.

애슐리의 일정은 우연한 사건들로 인해 점점 길어지게 되고, 개츠비는 그녀를 기다리다가 전 애인의 동생 챈(셀레나 고메즈)를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낭만에 대한 공감을 형성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개츠비와 애슐리의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은 우연의 역할인 것처럼 보인다. 애슐리는 원래 롤란 폴라드의 인터뷰를 하기로 예정되었던 학생이 아파서 대신 인터뷰를 맡게 되었고, 개츠비는 이러한 애슐리의 행운 덕분에 그녀와 함께 뉴욕으로 향하게 된다. 마침 포커에서 돈을 따 놓은 상황이라 경비도 충분했다. 뉴욕에서 롤란 폴라드의 인터뷰를 하던 애슐리는 우연히 그의 신작 영화의 시사에 참여하게 되고, 갑자기 도망쳐버린 롤란 폴라드를 찾는 임무를 맡게 된다.

애슐리를 기다리던 개츠비는 우연히 동창을 만나 다른 동창의 영화 촬영 현장에 찾아가게 되고, 그 영화에 출연하여 연기를 하면서 챈을 만난다. 챈과 동행한 미술관에서 친척을 우연히 만나 가지 않으려고 했던 엄마의 파티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엄마의 비밀까지 듣게 된다. 각자의 우연들이 만들어준 사건들을 겪고 재회한 개츠비와 애슐리는 이별하게 된다. 개츠비가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뉴욕에 머무르는 결정을 하게 되면서이다.

 

사진ⓒ(주)버킷 스튜디오

왜 개츠비는 그런 선택을 했고, 애슐리는 그런 선택을 생각해보지도 않았을까. 개츠비와 애슐리모두 우연들로 인한 사건들을 겪었는데 말이다. 그들이 겪은 우연들의 성격이 서로 달랐기 때문일까?

사실 개츠비와 애슐리의 이야기는 우연이 이끄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사건들이 다가오는 것은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의지에 의해서이다. 인터뷰를 맡게 된 애슐리를 따라가기로 한 것은 개츠비가 스스로 한 결정이고, 애슐리가 롤란 폴라드의 신작 시사에 참여하게 된 것도 그녀가 롤란의 제안을 수락했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영화 출연을 거절할 수 있었고 챈과도 가까워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애슐리는 각본가 테드(주드 로)가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할 때 개츠비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개츠비와 애슐리는 그들이 겪는 사건이 자신의 의지에 대한 선택이었음을 외면하고 우연에 책임을 돌린다.

 

사진ⓒ(주)버킷 스튜디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우연에 돌리는 것은 개츠비와 애슐리 모두 마찬가지였는데, 왜 개츠비만 자신의 삶을 바꾸는 선택을 우연이라는 핑계 없이 하게 되었을까. 개츠비가 애슐리와는 다르게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 개츠비가 그러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그가 조금 더 낭만적이었기 때문이다.

피아노와 재즈를 사랑하고, 운명적인 인연을 꿈꾸며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개츠비는 ‘인생을 멋지게 망치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낭만적이었다. 뉴욕에 남기로 한 개츠비의 선택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지. 그가 그것을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낭만은 개츠비가 무언가를 바꾸게 만들었다.

[글 선민혁, sunpool1347@gmail.com]

 

사진ⓒ(주)버킷 스튜디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