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 데이 인 뉴욕> 비 그리고, 재즈
<레이니 데이 인 뉴욕> 비 그리고, 재즈
  • 배명현
  • 승인 2020.05.1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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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A Rainy Day in New York, 미국, 2018, 92분)
감독 '우디 앨런' (Woody Allen, Allan Stewart Konigsberg)
사진 ⓒ  ㈜버킷스튜디오
사진 ⓒ ㈜버킷스튜디오

결국 개봉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도 고민하지 않을 건 아니다. 그러나 결국 보게 되었다. 수양딸을 성폭행한 사람의 영화. 그러나 작품과 작가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그의 영화를 찾았다.

결과적으로 영화가 주는 즐거움은 훌륭했다. 자기 복제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돌았고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있지만 말이다. 이번 영화도 자기 복제라고 느낄만한 부분이 많다. 페르소나를 영화 안에 삽입 한다거나, 인텔리 뉴요커가 나와 예술에 대해 떠든다거나, 대화 안에 간간이 박혀있는 유머들이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나름 우수한 자기 복제품 정도로만 여겨선 안될 것이다. 35년생 이지만 여전히 세련된 로멘스를 만든다는건 그야말로 엄청난 일일테니까. 영화는 우디 앨런이 영화에서 늘상 보여주는 방식으로 들어간다. 대화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가치관을 보여주고 사건으로 가치관의 발현을 보여준다. 물론 대화에 성적인 뉘양스를 넣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사진 ⓒ  ㈜버킷스튜디오
사진 ⓒ ㈜버킷스튜디오

주인공 개츠비(티모시 샬라메)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잘생긴 얼굴과 부자 부모님, 멋진 재즈를 연주할 줄 아는 피아노 실력과 학벌까지. 물론 공부 대신 도박에 미쳐있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에겐 한 뷔페 식당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의 애인 애슐리가  있다. 그녀는 학교 전체 미모 1등에 빛나는 아름다움과 은행 여러개를 소유한 부모님을 가졌다. 이 부족할 것 없어보이는 선남선녀에게 우디 앨런은 짓궂은 장난을 친다.

개츠비에게는 헤어진 전 여친의 동생이 나타난다. 오랜만에 만난 둘은 이야기를 제대로 나눌 시간도 없이 키스를 한다. 영화 촬영이라는 좋은 핑계로 키스를 한 두 사람. 반대로 영화 감독   롤라 폴라드를 취재 하려던 애슐리에게 차례대로 멋진 남성들이 등장한다. 취재를 하려던 롤라 폴라드는 물론 각본가 테드, 섹시한 영화배우 프란시스코 베가까지.

영화는 두 인물의 등장 비율을 잘 나누어 균형을 잡고 있다. 어느 인물에게 힘을 쏟아 관객의 감정이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해두었다. 그런데 왜 관객은 애슐리보다 개츠비에게 끌리는 걸까. 이 교묘한 감독 우디 엘런은 사건에 그 힘을 실어두었다. 예를 들면 개츠비에게는 모든 우연과 운명이 다가가와 선택을 강요받는 다는 느낌을 준다. 애슐리가 연락 두절이 되고, 연기를 가장해 전 애인의 동생인 챈과 키스를 하는 등. 심지어 챈과 함께 간 미술관에서 친척을 만나 어머니의 파티에 끌려가는 것 까지.

그러나 모든 선택에 있어 그가 들어갈 틈이 없던 건 아니다. 그의 우유부단함 속에는 일종의 패배 의식이 들어있다. 자신이 관계를 이끌어갈 능력이 없으니 타인이 자신을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심정 같은 것 말이다. 다만 그 중간 중간 챈에게 매력을 어필할 지점들을 넣어주면서 관객을 설득한다.

챈의 집에서 개츠비가 보여주는 <Everything Happen to Me>의 피아노 버전이 대표적이다. 마치 집에 있는 피아노를 우연히 치는 것 처럼 말하고는 있지만 분명 개츠비 의뭉스러운 의도가 깔려있다. 챈이 머리를 말리며 듣는 표정이 1차 증거이며, 챈이 끈적한 눈으로 개츠비를 바라볼 때 개츠비 또한 피아노 대신 고개를 들어 챈이 있는 곳을 바라본다. 하지만 우디 앨런은 이 장면에서 개츠비의 시선을 담지 않는다. 고개를 든 뒤통수만 보여줄 뿐이다. 이 순간을 앨런은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보여주고 느끼도록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티모시의 얼굴만으로 설득이 되었을 것이다…)

 

사진 ⓒ  ㈜버킷스튜디오
사진 ⓒ ㈜버킷스튜디오

챈과 개츠비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애슐리는 감독과 각본가와 배우를 차례대로 거친다.  결과적으로 이루어진 건 아무도 없었지만 선택은 그녀가 했다. 다만 그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은데는 우연(프란시스코 베가의 애인이 집에 쳐들어온 것)이지만. 그녀는 개츠비 앞에서 마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말을 한다. 여기서 관객이 할 수 있는건 조소이다. 진실을 엿본 관객과 그것을 숨기려는 인물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평생 영화판에서 살아온 우디엘런이 감독, 각본가, 배우를 가리지 않고 까고 있다는 것이다. 헐리웃 영화판의 공공연한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하나?

조소를 보낸 관객은 이제 까마득하게 개츠비의 ‘잘못’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엄마의 허세파티에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낸 개츠비는 엄마에 대한 내적 화해는 기본이며, 완벽하게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관객은 개츠비에게 감정이입이 될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드디어 개츠비는 챈과의 대화에서 언급했던 시계탑에서 키스를 하게된다. 6점짜기 키스를 봄 까지 10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대사와 함께 말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역시 크게 달라진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운명적 만남, 현재에 대한 긍정과 중간중간 지적 유머, 자신에 대한 조소와 해학. 그럼에도 낭만을 아는 노 감독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영화를 접하다보면 낭만에 대한 건 고사하고 냉소에 절어있는 영화를 자주 접하기 마련이다. 그런 영화들 사이에 비와 재즈의 만남을 아는 감독이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설사 다른 감독들이 재즈와 비를 함께 담는다 해도 이런 영화는 우디 앨런밖에 만들 수 없다. 진정한 로맨틱을 만들어 내는 건 영화적 기법에 통달한 사람이 아니라 진정 그 감상을 느껴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진 ⓒ  ㈜버킷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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