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현 감독의 세계 - <사냥의 시간> 어색한 추격전
윤성현 감독의 세계 - <사냥의 시간> 어색한 추격전
  • 선민혁
  • 승인 2020.05.02 2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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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냥의 시간'(Time to Hunt, 한국, 2020, 134분)
감독 '윤성현'(Yoon Sung-Hyun)

윤성현 감독은 <파수꾼>에서 잘 만든 인물들을 관객들이 충분히 경험했을 만한 종류의 사건 속에 던져 놓는다. 그리고 절제된 시선으로 그것을 담아낸다. 이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관계’라는 것에 대해 낯설게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고 이를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감독의 차기작은 기대할 수밖에 없다. 개봉 전부터 기대를 받은 <사냥의 시간>은 개봉 연기를 반복하며 의도치 않게 기대감을 늘려가다가 마침내 넷플릭스로 개봉하게 되었다.

개봉일에 나는 기다리던 영화를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에 넷플릭스에 로그인했다. 로그인 하자 마자 메인화면에서 <사냥의 시간>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을 곧바로 클릭했다. 근미래라는 영화의 세계관을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의 초반부에서, 나는 실망했다. 이 영화를 극장의 스크린이 아닌 방 안에서 노트북으로 봐야 한다는 점에서였다. <아키라>를 연상하게 하는 비주얼의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이런 종류의 아쉬움은 영화의 3분의 1 정도가 지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 동안 주인공들은 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그들의 사연을 관객들에게 알려주었다. 이 과정에 다른 영화와 비교되는 특별한 재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꽤 준수한 연출은 나에게 이질적인 배경 속에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주인공들의 계획이 실패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고 그들이 계획대로 잘 해내길 바랐다.

 

사진ⓒ리틀빅픽처스

그러나 영화의 초반부가 지나고 나자, 나는 다른 의미의 실망을 하게 되었다. <사냥의 시간>은 개봉을 기다리며 부풀어온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않았다. 사실 이 영화를 전혀 기대하지 않고 봤다고 하더라도, 잘 만들었다고 하기는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은 관객들이 말하는 것처럼, <파수꾼>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했던 ‘인물들의 대사’라는 영화의 요소는 <사냥의 시간>에서는 가장 큰 단점이었다. <사냥의 시간>에는 어색한 대사들이 많다. “다 잘 될 거야.”, “가족이 있는 게, 부모님이 있는 게 어떤 기분이야?” “명심해, 어디에 있든, 벗어날 수 없어.” 등과 같이 자연스럽게 소화하기가 어려운 대사들은 여러 작품에서 연기력이 충분히 증명된 배우들이더라도 자연스럽게 표현해낼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대사들이 어색한 것일까?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 ‘연기를 잘한다’고 하기에 충분한 배우들인데도 말이다. 영화에 자연스럽게 표현되기가 너무나 어려운 대사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사들이 자연스럽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들이 지나치게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어색한 대사들은 목적이 너무나 잘 드러난다. ‘가족이 있는 게 어떤 기분이냐’, ‘혼자 두지 말라니까’ 같은 대사는 장호의 성장배경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려고 하고, ‘무사할 것 같냐’는 질문들은 대놓고 복선이 되려고 한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사냥의 시간>은 추격전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이 추격에는 긴장감이 부족하다. <사냥의 시간>은 특유의 비주얼과 사운드, 연출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추격전의 본질인 긴장감을 충분히 만들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서스펜스가 약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추격을 하는 ‘악당’의 캐릭터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준석과 친구들을 쫓는 ‘한(박해수)’은 그냥 ‘재미로’ 그들을 쫓는 거라고 반복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이 추격을 정말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한은 자신의 영업장을 공격한 자들에 대한 응징이라는 명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동기는 없지만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준석과 친구들을 사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은 적대할 자가 이 세상에 없는 매우 강하고 감정이 없는 인물인 것으로 묘사되면서도 단순한 속임수에 속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성격이나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지가 않은 캐릭터이다.

이러한 추격자 한의 모호한 캐릭터 때문에 추격전의 정체 또한 어색해진다. 생존을 위해 도망치는 준석과 친구들이 유희를 위해 사냥을 즐기는 한을 이길 수 없다는 식의 의미부여도 자연스럽지 않고,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근본적인 불안을 영화가 표현했다고 보기에도 근거가 충분하지 못하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사냥의 시간>이 흥미로웠으나 충격적이거나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이유이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냥의 시간>은 여러가지 의미로 너무나 아쉬운 영화다. 영화에 대하여 다소 과격하게 표현한 누군가는 이 영화가 속편을 암시한 것이 양심이 없는 일이라고도 말한다. 나 역시도 이 영화에 크게 실망한 것은 마찬가지이나, 그래도 <사냥의 시간>의 속편을 보고 싶다. 이번에는 극장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그린 세계가 그다지 충격적이지는 않았으나 이 안에서 만들어지는 더 많은 이야기를 보고 싶은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관객을 대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사냥의 시간>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싶다.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 이번에는 실망시키지 않고 최대한 잘 만들지 않을까.

 

사진ⓒ리틀빅픽처스

[코아르CoAR 선민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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