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시간을 머금은 얼굴 (후편)
[클린트 이스트우드] 시간을 머금은 얼굴 (후편)
  • 배명현
  • 승인 2020.04.29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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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감독론
영화 '그랜 토리노',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그랜 토리노',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 글을 적는 것이 아직 이를 수도 있다. 그의 신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리처드 주얼>(2019)은 역시 정치적인 영화이다. 그가 한결같이 추구해온 정치적 시각을 제시하는 영화.

그는 분명 어느 순간부터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설 기반의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와 실화적 사건을 각색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2007),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 이후 그는 현실에 기반한 영화를 만들었다.

어느 순간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2012년 <제이. 에드가>(2011)로 돌아가고 싶다. <제이. 에드가>는 훌륭한 영화이다. 영화적 스킬과 편집에 대한 원숙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사건을 다시 영화로 복기하면서 현실에 있던 갈등을 '시민'들에게 회상하게 한다. 영화로서 그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건 단순히 '영화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해야한다'거나 '예술은 현실을 바꾼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실화'를 다룬다는 것은 그 책임감이 결코 가벼울 수 없다. 영화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 사건에 반 했던 자들을 모두 적으로 돌린다 해도 다르지 않은 말이다.

그다음 영화는 <아메리칸 스나이퍼>(2011)였다. 스나이퍼 영화의 묘미인 정밀한 사격과 주인공을 쫓는 미지의 적에 대한 서스펜스를 모두 잡는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늘 그 이상을 담는다. PTSD로 인한 개인의 무너짐과 애국에 대한 아이러니를 담는다. 그가 공화당 지지자라는 사실에서 나는 약간 놀랐다. 그가 <그랜 토리노>(2008)에서 보여준 메시지가 새로운 인종에게 '(굳건한)미국의 가치'를 물려준 것으로 생각해보면 그가 국가를 공격해본 적이 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설리:허드슨강의 기적>(2016)은 어떠한가. 물론 영화에 픽션이 추가되어 있긴하지만, 개인의 선택에 대한 옹호와 한 인간에 대한 존중을 그린다. 전체라는 권력에 저항하는 인간 한 명의 존엄함을 카메라로 담아 세상에 공개한다. 그에게 실화를 찍는 다는 것은 그런것이다. 그가 선택한 이야기와 그가 카메라에 담는 시선은 늘 위대해진다. 그런데 영화는 <15시 17분 파리행 열차>(2018)[그의 팬으로써 아쉬운…]를 지나 <라스트 미션>(2019)으로 도착한다.

물론 <라스트 미션>은 실화 기반의 영화이다. 그러나 무엇이 다른가. 그가 직접 주연을 연기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노인이었기 때문에? 과연 그럴까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만큼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을 찾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아예 불가능 한 것도 아니다. 그는 분명 실화기반의 영화에 자신의 이야기를 불어넣는다.

딸과 화해와 노구의 몸으로도 젊은 여인과 밤을 보내길 즐거워하는 모습, 동시에 목숨을 걸고 부인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얼 스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회고록이자 반성문이었다고.

그가 반복되는 라이딩 장면에서 어느 순간 느낀 건 가족의 존재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가 가족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맥락을 뒤져보아야 한다. 평생을 '일'과 함께 산 스톤. 그는 과거 잘나가던 원예 농업자였으나 현재는 무엇하나 남은것 없는 노구이다.

그런 그는 한 순간 마약과 엮이며 돈을 벌게된다. 그는 가장 먼저 차를 바꾼다. 멋들어진 트럭을 끌며 자신의 과거 영광의 순간을 만난 것 처럼 행복해한다.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마약을 운반하는 그를. 보며 카르텔은 만족스러워한다. 여기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대입해보자. 과거 배우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그는 감독으로 돌아서 수많은 영광을 누린다. 하지만 그도 어느 순간 버거운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리처드 주얼', 사진 ⓒ IMDb
영화 '리처드 주얼' 현장 스틸 이미지, 사진 ⓒ IMDb

'미국'에서 누구보다 미국스러운 영화를 만드는 그에게 그의 영화를 찾는 관객이 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 것이다. 그런 그가 다시 한번 가족과 만나고 싶어 한다. 그가 다시 재정비를 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아주 잠시. 때문에 <라스트 미션>에서 딸의 역할로 그의 친딸 앨리슨 이스트우드를 배역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영화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스톤은 가족 앞에 다시 슬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가장 부양중심은 남성 중심 사회의 필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많은 것을 놓으려한다. 영화 마지막에 경찰 콜린 베이츠와 조우하며 아무런 저항 없이 짓던 표정은 이스트우드의 진심이다. 피 묻은 얼굴로 아주 잠시 카메라를 스쳐보는 순간, 관객은 이것이 영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분명 이스트우드는 이 순간 스톤이 아닌 자신을 보여주려 한다.

그런 그가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 <리처드 주얼>은 다시 정치적인 영화로 돌아왔다. 그가 내려놓은 미국의 가치에서 그가 초월한 무엇을 보여줄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내려놓은 뒤 다시 무엇을 쥐고 왔는지 말이다.

[코아르CoAR 배명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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